Dark Light

엄마, 제게 왜 책을 읽으라 하셨나요?

이권우, 『책읽기의 달인, 호모 부커스』, 그린비, 2008.(‘알라딘’에서 정보보기)


 


※ 문제) 현대인이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를 보기에서 고르시오.

① 김고시(29세) : 책을 읽는 이유는, “가진 거라고는 불알 두 쪽밖에 없던 공자”(21쪽)가 이룬 “세속적인 성공”을 벤치마킹하기 위해서야. 오늘날은 “지식이 자본을 구해 더 큰 이익을 남기는 시대”(22쪽)라잖아. 나도 “사회신분의 상승”(24쪽) 좀 해보자고. 쫌!

② 나숙녀(12세) : 책읽기는 “우리를 자극하고 성장 시”(47쪽)키잖아.

③ 최서기(68세) : 책읽기가 온축(蘊蓄)되면, 그것이 “큰 가치가 있는 삶의 지혜로 드러”(53쪽)나기 때문이지. 에헴.

④ 박찬훅(38세) : “부가가치를 만들어 내는 생산자가 되기 위해”(55쪽)선 책읽기가 매우 중요합니다. “디지털 혁명의 시대에 창의력과 상상력이 부의 원천”(62쪽)이죠.

⑤ 강마에(40세) : “고전은 한 시대 공동체 구성원들의 지적 화두를 치열하게 고민한 흔적”(71쪽)입니다. 그것들은 “도탄에 빠진 삶을 구원해” 내려 하기 때문에, 뜨겁고 격렬하죠. 그런데 여러분은 지금 뭘 하는 겁니까? 카뮈가 웃겠네요.

⑥ 정신과(39세) : ‘교양’을 위한 책읽기는 20세기적 풍경이에요. 이젠 “성숙을 위한 책읽기”(78쪽)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그 지향점은 “‘마음의 상처’와 ‘심리적 장애’를 치료하는데” 있습니다.

⑦ 강신술(55세) : 서경식씨가 말입지, “현대인에게 요구되는 교양이란 한마디로 말해서 타자에 대한 상상력이라고 나는 생각한다.”(82쪽)고 말했습지. 하므로 책읽기는 말입지, “타인의 고통을 상상하는 힘을 키우”(87쪽)기 위해서라는 말씀입지.

⑧ 신전위(17세) : 책읽기? 무례하고 거드름 피우는 저자에게 마음대로 침을 뱉고 범하기 위해서지.

⑨ 국영수(18세) : 넌 논술 안보니?

⑩ 오수시(18세) : 조용히 하고 빨리 읽기나 해. 선생님이 내일까지 감상문 써오랬잖아.

⑪ 최묵향(18세) : 재밌으면 그만이지, 뭘.

⑫ 모올라(30세) : 이유가 꼭 필요한가?

⑬ 주관식(○세) : (            )


다소 곤란한 책을 손에 잡게 됐다. 감상문만 하나 쓰면 된다기에 무턱대고 온라인서점 ‘알라딘’으로부터 서평단 이벤트 도서를 받은 게 문제다.

제목만 봐도 알겠지만, 『책읽기의 달인, 호모 부커스』는 책 읽기에 대한 책이다.

책 읽기? 간혹 숙제할 때 읽는다. 훌륭한 책도 다섯 권가량 알고 있다. 하지만 책의 인첸트 효과만큼은 오래전부터 깨달아, 책 쇼핑을 제법 즐긴다. 알라딘에 중고샵이 생겼을 땐, 동네 골목을 뛰어다니며 사이트 주소를 외쳤다. 유에스이디 쩜 에이엘엘에이….

나는 초등학교 4~5학년 즈음 ‘미하엘 엔데(Michael Andreas Helmuth Ende, 1929-1995)’가 쓴 『모모』에 감명받아, 당시 신간이었던 『마법의 술』을 구매했다. 그런데 이 귀한 책을… 엄마가 무심히 밟아 더럽히고 말았다. 나는 격분하여 벌렁 누워 다리를 구르며 괴성을 지르다가 많이 맞았다. 소년의 뭉클한 애서심을 강변하기엔 나는 너무나 어린 나이였다. 그래도 고무장갑은 벗고 때리셨으면 좋았을 텐데.

책에 관한 또 한 가지 기억이라면 ‘헌책 줄게 새 책 다오’가 있다. 초등학교 시절, <학우서점>에서 헌책을 새 책과 몰래 바꾸다가 들켰다. 주인아주머니는 “책을 바꿔간 것 같네?”라며 모든 걸 제자리로 돌려놓고 보내주셨다. 그분께는 지금도 감사한다. 강력한 싸대기라도 맞았다면 서점 연쇄 방화범이 되었을지 모른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르겠지만… ‘어라?’하는 사이에 책과 죽을 때까지 교분을 쌓아야 하는 길로 와버렸다. 하지만 나는 아직도 책과 책 읽기가 무엇인지 모르겠다. 도대체 우리 엄마는 왜 책을 읽으라 하셨을까? 그래서 위 문제의 정답으로 ⑫번 ‘모올라(30세)’씨를 선택했다.


스스로를 ‘책 읽기의 달인’(5-9쪽 참조)이자 ‘소문난 책벌레’(55쪽·67쪽)라고 말하는 저자 이권우씨는 책 읽기에 의미를 다양하게 부여한다. 나의 본의 아닌 왜곡이 있었겠지만, 그는 ①번부터 ⑦번까지를 하나씩 들며 책 읽기의 중요성을 말한다. 종합하면… 이 기획이 왜 「인문학 인생역전 프로젝트」인지 대강 이해할 것도 같다. 하지만 묻지 않을 수 없다. 정말로, 진짜로, 책 읽기는 그만한 효용을 지니고 있는가. “사회신분의 상승”(24쪽)이라는 것이 책 읽기로 가능한 것인가.

나는 인문학으로써 인생 역전을 이룬 사람을 본 적이 없다. 오히려 곤궁하거나 지독한 자기혐오로 인해 괴로워하는 사람은 많이 봤다. 또는 온갖 프로젝트와 학회 발제로 말미암아 치질수술 일정조차 잡지 못하는 사람을 안다. 그는 암치질이다. 서글픈 일이지만… 책 읽기가 ‘극기(克己)’며 ‘양명(揚名)’이던 시대는 아주 오래전에 끝났다. 이 와중에 실용적인 접근방법은 ‘도서평론가’가 욕심낼 만한 방향이 아니다. 지켜보기 안쓰럽다고 해서, 초판 2천 부도 안 팔리는 책의 분투에 대해 서툰 거짓말로 응원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우선, 책을 통해서 계급의 ‘상승’과 ‘유지’가 가능하다는 주장은 제한하고 축소해야 한다. 현대에는 권력화된 지식은 없고 권력화된 정보만 있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출간된 것은 고사 직전의 지식이다. 세계의 변방인 한국에서는 그조차도 구하기 어렵지만 말이다. 그래서 ⑦번 “타인의 고통을 상상하는 힘”으로서의 책 읽기는 더욱 반짝거린다.

 

저자 이권우는 2부에서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에 관해 이야기한다. 저자에겐 매우 죄송스럽지만 1부보다 실망스럽다.

“굳이 권모와 술수가 넘쳐나고 살육과 탐욕으로 점철된 책”(103쪽)인 『삼국지』를 읽지 말고, “참된 것을 향한 모험이며 이를 통해 영혼이 성장하는 과정을 그린 작품”(104-105쪽)인 『서유기』를 읽으라고 권하는 장은 저자의 생각을 살필 수 있어서 재미나다.

하지만 느리게 읽는 “완행열차식 독법”(113쪽) 장은 지나치게 감상적이고, ‘다치나바식 독서법’에 반박하는 장은 독서 메모에 그치며, “비판적이고 창조적으로 수용”(138쪽)하기 위해서 책 읽기와 연계한 토론을 권하는 장과 ‘깊이 읽기’를 예찬하는 장은 참고할 만하지만 조금 뻔하다. 사실 저자의 논지보다 인용된 글만 꼼꼼히 읽으라고 권하고 싶을 정도다.

그 외에도 “한 작품의 창작 배경에 얽힌 관련자료를 꼼꼼하게 읽어 봄으로써, 행간에 숨어 있을 작가의 은밀한 숨결을 느껴보”(154쪽)는 “겹쳐읽기” 방법, “지금 내 눈높이에 맞는 책을 읽어야”(161쪽)하지만 “책읽기에도 도전이 필요하다”(166쪽)는 주장, “기존의 가치관이나 가치관을 적극적으로 옹호하고, 그것의 가치를 높이 평가해 주는 책을 읽는”(170쪽) ‘각주의 책 읽기’로부터 자신의 “낡은 세계관을 스스로 비판하고 과감하게 버려야 하”(172쪽)는 ‘이크의 책 읽기’로 발 내디뎌야 한다는 주장이 책 속에 담겨 있다.

다 그럴듯한 말이다. 이해 못 할 주장도 없다. 이미 예측했기 때문에 ‘방법의 새로움’을 기대하지 않았고 ‘읽기의 새로움’만 확인하고자 했다. 내 바람이 지나쳤던 것일까? 그조차 미흡하다. 너도 알고 나도 아는 대로, 책 읽기 방법은 사실상 더 나아갈 곳이 없다. 좋은 책을 (잘) 읽을 것. 문장은 빨리 읽을 수 있어도, 그 안에 깃든 저자와 인물의 감정만큼은 간추려 읽을 수 없다. 그것을 온전히 내면화한 뒤에, 함께 경외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나 이야기 나눈다는 것은 매우 유쾌한 일이다. 분명히 말하지만, 이게 전부다.

저자는 말한다. “문제의식이 없거나, 주제의식이 애매하거나, 문장이 인상적이지 않다면 그 책은 돈 들이고 시간 들여 읽어볼 가치가 없다는 뜻이다.”(141쪽)라고. 그렇다면 이 책은?

『책읽기의 달인, 호모 부커스』는 10월 둘째 주 인문학 베스트셀러(알라딘) 3위다. 사람들의 별점도 매우 후하다. 하지만 나는 권하지 않겠다. 출판사에서 ‘서평단’에게 선뜻 책을 보내준 것은 홍보의 일환이었을 테니, 나는 구매를 충동질해야 마땅할 것이다. 하지만 더 ‘좋은’ 책이 더 ‘많이’ 팔리길 바란다. “최소한 살아가는 게 따분하지 않”(오에 겐자부로, 150쪽 재인용)을 만한 책들이 신바람 나게 팔려야, 무자비한 충동적 도서 구매로 인해 개인파산 신청을 하고도 입이 헤벌쭉 벌어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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