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월 24일의 일이다. 나는 노트북을 수리하기 위해 후지쯔 서비스센터 용산지점을 찾았다. 이제 대학교를 갓 졸업했을 듯한 여성 직원의 첫인사에 고개를 꾸뻑 숙이고 번호표를 뽑아 소파 제일 구석 자리에 앉았다. 65번. 내 차례 앞에 네 사람이 대기 중이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능숙하게 커피 한 잔을 탔다. 혀에 프림이 엉기는 감각이 싫어져서 인스턴트 커피를 피해 왔지만 달리 마땅히 할 일이 없었다. 가방 안에는 문학평론집이 한 권 들어 있었다. 하필 왜 이런 책을 들고 왔을까. 나는 더럽게 맛없는 맥심 모카골드를 홀짝거리면서 아무려면 어떠냐고 중얼거렸다. 어차피 노트북 수리만 마치면 곧장 집으로 돌아갈 생각이었다. 주변에 앉아 있던 사람들이 하나둘 가버리고 그 곱절의 사람이 들어온 후에 여직원은 65번 고객을 찾았다. 나는 여직원의 접수 책상 위에 노트북을 내려놓고 맞은편 의자에 앉았다.
― 고객님, 어떤 이상이 있으신가요?
― 너무 시끄러워요. 쿨러가…. 이것 때문에 방 안이 너무 시끄러워요.
나는 잔뜩 인상을 쓰며 증상을 말했다. 시끄러운 노트북으로 인한 나의 증상을. 이 광경을 그대로 잘라 신경정신과에서 두통이나 수면 장애를 호소하는 신경질적인 남자가 등장하는 씬으로 사용해도 무방할 만큼, 나는 예민해져 있었다. 여직원은 이런 호소를 많이 겪어온 듯 고개를 자연스럽게 끄덕이며 컴퓨터에 무언가 입력했다. 여직원의 희고 길고 가느다란 손가락은 낭비 없이 움직여 자판을 찍어냈다. 나는 모니터 안을 확인하고 싶었다. 나의 호소는 얼마나 반영되었을까. 불안한 마음에 고통에 관한 어휘를 몇 개 더 덧붙였다.
“심각한 노트북 쿨러 소음. 늘 혼자였던 고객의 미쳐버릴 만큼 조용했던 방이 믹서 안 보다 참을 수 없는 장소로 변질되었음. 수리가 불가능할 경우에는 의료기관과의 협력이 필요함.”
이런 기록을 기대한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나는 왜 이다지 시시콜콜해졌을까.
― 잠시만 자리에 앉아 기다려 주세요. 기사님이 부르실 거예요.
나는 접수증을 손에 들고 자리로 돌아갔다. 최근 아내에게 매를 맞고 남성의 전화 상담원과 몇 시간쯤 울며 통화를 한 기분이 들었다. 이것은 분명 열패감이었다. 상대가 없는 열패감이 프림처럼 온몸을 감아 기분이 텁텁해졌다. 내가 소파 위에 맥없이 떨어지려 할 때 여직원의 목소리가 들렸다.
― 고객님, 혹시 비밀번호 설정되어 있나요?
― 네? 어… 어…. 네.
나는 내 비밀번호를 떠올려 봤다. 평소 어떤 문자를 익숙하게 친 뒤 내부로 들어갔는가. 나의 내면과 유사한 그 데이터 구조물을 어떤 문자열로 보호해 왔는가.
― 그립다.
― 네?
여자는 당황한 표정이었다. 한편으로는 불쾌감이 몸에 스민 얼굴이었다.
― 비밀번호요. 영문 자판으로 ‘그립다’라고 쓰면 돼요.
더욱 늘어난 사람들의 모든 시선이 나를 향해 있었다. 얼굴이 뜨거워졌다. 여자 직원을 당황케 한 게 미안했다. 하지만 나는 아무 잘못도 저지르지 않았다. 그리웠다. 내가 아는 것과 내가 알지 못하는 것, 그 모든 것이 막연히 그리웠다. 컴퓨터를 켤 때마다 수도 없이 “그립다”며, 한숨으로 그리움의 부레를 팽창시켰다.
팽창하고 팽창하다가 스스로를 집어삼키고 깊숙이 가라앉은 것들, 잘 지내십니까? 에… 이곳은 고스란히 있습니다. 그리운 것은 그리운 대로. 저는 딱 ‘어제’가 범람하지 않을 만큼만 살고 있습니다. 모쪼록 ‘어떤 결정(結晶)’이 되어 다시 대면하길 빌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