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는 나를 돌아봤다.
그 순간, 지구를 삽시간에 멸망시킬 수 있을 만큼 엄청난 숫자의 유성이 내 안으로 밀려 들어왔다. 눈부시다. 종말은 원래 이렇게 눈부신 것인가. 믿고 싶지 않지만, 그 유성우는 모두 경멸의 조각이다. 나는 감탄한다. 한 사람에 대한 경멸이 고유한 속성을 유지한 채 이토록 다양하게 변주될 수 있다니. 조금 전까지 내 마음속에 가득 찼던 즐거움은 어리석은 사람의 구제할 수 없는 조증처럼 여겨졌다. 아, 여자의 경멸 담긴 그 크고 동그란 눈. 내가 눈만 감으면 기다린 듯 여자가 눈을 떠 내 안의 지저분한 것들을 바라본다. 내 영혼의 음습함은 천 개의 다리를 써서 멀리멀리 달아난다.
사실 나는 만 마리 양의 젖을 짜고도 잠들지 못해 침대에서 내려와 이 글을 쓰고 있다. 밤은 여자의 검고 반짝거리는 눈이다. 오직 여자만이 지녔던 아름다운 눈은 주술적 응시로 인해 거대한 지네의 빛나는 견갑(堅甲)으로 변해버렸다. 한때 여자가 나를 부서진 자전거나 멈춘 시계나 어처구니없는 맷돌이나 부러진 연필이나 벌레 먹은 알밤이나 편의점 영수증이나 주차확인증처럼 대수롭지 않게 응시해 주었을 때, 나는 착한 소녀의 손 안에 웅크린 연약한 곤충 한 마리가 되었다. 하지만 결코 그 시간으로 돌아갈 수 없음을, 천 개의 다리를 내려다보며 지금 나는 생각한다. 나는 특출난 재능 하나 없는 혐오 곤충이 되었다.
나는 변기에 앉아서 천 개의 다리로 머리를 쥐어뜯다가 천 개의 다리로 레버를 당겨 지하로 빨려 들어가고 싶다. 또, 나는 천 개의 다리로 나의 눈알을 번쩍 들어내고 싶다. 내게 눈이 없었다면, 늘 조용한 여자는 그냥 허공이었을 것이다. 그랬다면 이 비극은 허공 속 망상에 그쳤을 것인가. 아니다. 달리는 이야기에서 내키는 대로 하차할 순 없다. 이야기는 성격에 현재를 맡기되, 미래만큼은 어쩔 수 없는 끝에 맞서 스스로 짓는다. 그런고로, 나는 누구보다도 허공을 사랑하는 사람이 될 것이다. 허공을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라니. 이런 나를 이야기는 어떻게 부추겨 어디에 이르게 할 것인가.
그런데 내가 여자에게 보낸 감정은 지금쯤 무엇이 되어 있을까. 나는 쉽게 예측할 수 있다.
미안하다. 진심으로 사과한다.
덧붙여, 진심으로 궁금한데, 나는 나의 무엇 혹은 어디까지를 사과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