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1008 (금)
달은 다정하다. 어둠을 뿌리치는 걸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20101008 (금)
“과연 외계의 현실은 내가 몸부림을 치고 있는 동안 좀 쉬면서 기다려 주었으면, 하고 생각되는 때도 있었다. 그러나 기다려주는 현실은 이미 신선한 현실이 아니다.” ― 미시마 유키오, 『금각사』
20101008 (금)
발치부터 낙엽을 센다. 나의 시선은 어느새 멀리 떨어진 나뭇가지에 올라가 있다. 그때 마침, 모퉁이를 돌아 G가 걸어왔다. 나는 당황한 나머지 얼른 고개를 들어 휘휘휘 휘파람을 불었는데, 네가 왜 또 거기에 있는 것인지.
20101009 (토)
불꽃 무리에서 각자 다른 것을 본다. 나는 별자리 같은 세 송이 붉은 꽃을 봤다. 지나치게 아름다웠지만, 그건 나와 너무 멀다. 나는 널 생각했다. _서울세계불꽃축제, 한국.
20101009 (토)
가을바람을 타고 높이 날아올랐다가 미련 없이 강으로 뛰어드는 빛이 있다. _서울세계불꽃축제, 캐나다.
20101022 (금)
C는 남쪽으로 가자고 말했다. 그곳은 내가 가 본 어느 도시보다도 남쪽에 있다. 그렇다 해도, 한겨울에 가을의 복판으로 들어갈 만큼 먼 곳은 아니다. 그래도, 거기엔 바다가 있겠지. 바다에 막혀버린 섬도 있겠지.
20101027 (수)
열차 창 뒤로 물러나는 풍경을 보고서야 새삼 알게 됐다. 떠나는 것은 참 쉽다. 다시 돌아가야 할 곳을 떠올리다 새삼 알게 됐다. 그곳에서 나는 고아였다.
20101029 (금)
시속 300km. 나는 아기사슴 밤비의 숲을 산책하는 듯 평화롭다. 내가 올라탄 이 열차는 세상에서 가장 느긋한 KTX다. 내가 올라탄 시간도 세상에서 가장 느긋하다. 나는 아직 종착역을 정하지 못했다.
20101030 (토)
다시 KTX. 어제 정방향으로 가고 오늘 역방향으로 돌아간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 같은 기분이다. 내가 목적지에 닿았을 때, 이미 벌어진 나쁜 일을 되돌릴 기회가 모든 사람들에게 주어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