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 Light

여기가 내 집이다. 담배 <켄트 클릭>을 입에 물고 집 주변을 한 바퀴 돌고 나자 새삼 실감이 났다. 골목도 회관도 성곽도 어릴 적 그대로다. 고향은 징글징글하게 변하지 않는다. 군수나 도시개발과 과장이 태만했기 때문일지 모른다. 하지만 부지런쟁이 이명박 대통령의 임기가 끝나가는 이 시점에 생각을 해보니 게으른 공무원은 나쁜 공무원이 아니다. 오히려 모두들 좀 더 태만해질 필요가 있다. 일 년 동안 2천 193시간이나 일한 덕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2개 회원국 중 연간 노동시간 1위를 차지했지만 주변 사람들의 삶은 과히 부러움을 살만하지 않다.

여기가 내 고향이다. 내 마음속 단어장에 있는 ‘고향’에선 소똥 냄새가 난다. 평생 살아있는 소를 몇 마리 본 적도 없는데 두엄 냄새가 난다. 뭐 이리 촌스럽대유…. 나름 신기한 일인데, 서울에선 생각이 사투리로 일어나지 않는다. 그런데 고향 땅만 디디면, 사투리로 생각하고 사투리로 말하거나 사투리로 말할 것을 미리 사투리로 생각한다. 나는 노인회관의 담장 아래에 쪼그려 앉아서 이 기막힌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고향이 없어. 어느 선배는 “나는 고향이 없어.”라고 분명히 말했다. 그 말은 고백이자 선언이었다. 나는 선배의 이력이 궁금했지만 묻고 알게 될 것이 두려웠다. 앎이 내게 요구할 행동이 두려웠다. 그런데도 고향에 관한 대화는 계속 이어졌다. 나는 내내 곤란한 심정으로 선배의 이야기를 들었다. 몇 해가 지난 지금, 그날 본의 아니게 들은 이야기는 다 잊었다. 그런데 “나는 고향이 없어.”라고 말하는 다른 선배를 사귀게 됐다. 그는 자신에게 고향이 없다는 말을 “나는 시조(始祖)야.”와 같은 의미로 사용했다. 나는 그 점이 못마땅해서 경솔하게 대꾸했다. “우와, 정말 부러워요. 이번 명절 아침에도 이불 속에 계실 거죠?”

나는 담뱃불을 밟아 끄고 집에 들어갔다. 어머니가 차려주신 아침밥을 떠먹으면서 어머니의 생신을 축하하는 일은 어딘가 아이러니했다. 그래도 어머니의 고깃국은 역시 혀에 착착 감겼다. 어머니는 올해에도 자신의 생일에 가족들의 건강한 얼굴을 볼 수 있어서 기쁘고 감사하다고 말했다. 나도 이 당연한 일이 얼마나 기뻐할 만한 일인지 이젠 알 것 같다.

우리는 아침뉴스를 보면서 ‘정봉주’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BBK 주가조작 사건 관련 허위사실 유포 혐의로 징역 1년의 실형이 확정된 정봉주 전 민주당 의원은 우리 집 근처 교도소에 수감됐다. 아버지는 홍성교도소 앞에서 열린 정봉주 석방 촉구 집회에 구경삼아 갔다가 “나와라, 정봉주!”를 따라 외치고 돌아왔다 했다. 그리고 이야기 말미에 이명박의 속 좁음을 탓하는 말을 조금 덧붙이셨다. 어머니는 집회와 그 참석자들에게 곱지 않은 말을 뱉으셨는데, 아버지는 옳고 그름보다 집회로 말미암은 지역의 경제효과에 대해 강변하셨다. 그 숱한 사람들이 밥 한 끼만 먹고 돌아가도…. 어쨌거나 홍성은 정봉주(가 수감된 교도소)의 고장이 됐다. 충남 홍성군 홍성읍 홍성우체국 사서함 9호 수감번호 271번 정봉주. 홍성군에서 홍성한우를 전국에 알리기 위해 수년간 지출한 비용이 얼마인지 모르겠지만, 홍성은 이명박의 배려 덕분에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아주 유명해졌다.

오후에는 어머니와 큰시장(오일장) 나들이를 했다. 정비를 마친 오일장 터는 시장도 상가도 마트도 아닌 어중간한 모습이었다. 시장 사람들은 재래시장의 정비 사업에 많은 기대를 걸었겠지만 시장의 온정은 보전하지 못했다. 그래도 시장 사람들은 예전 그대로였다. 이름 없는 시계를 펼쳐둔 난전과 좀약이나 바퀴벌레 박멸 튜브 등을 늘어놓은 생활용품 난전도 같은 자리에 있었다. 이 난전 앞을 지나면서 어머니는 내 고등학교 동창의 이름을 꺼냈다. 나는 십수 년이 지나서야 ㅈㅎ이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시계 난전과 생활용품 난전의 주인이라는 걸 알게 됐다. ㅈㅎ이는 고등학교 1학년 때 같은 반이었지만 그리 가깝지 않았다. 고등학교 2·3학년 때는 말 한마디 나눈 적이 없는 것 같다. 그런데 졸업을 한 뒤에 우연히 ㅈㅎ이의 안타까운 소식을 듣게 됐다. 그가 대학교 오리엔테이션에 참석했다가 절벽 아래로 떨어져 죽었다는 것이었다. 이후, 사고사라는 주장과 술 취한 선배들의 구타로 인한 타살이라는 합리적인 의심을 두고 학교와 보호자가 분쟁 중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의 부모님께서 ㅈㅎ이의 부검을 허락했다는 소식도 얼핏 전해 들은 것도 같다. 사인이 무엇으로 밝혀졌는지 모르겠지만 그건 남은 이가 살기 위해서 꼭 필요한 절차였을 것이다. 분명하고도 변하지 않는 사실은, 그들 곁에 외동아들이 없다는 점이다. 나는 ㅈㅎ이의 부모님이 어떻게 생의 의지를 다시금 마련했는지 궁금했다. 나라면 끼니때마다 죽고 살기를 거듭했을 것이다.

시장에서 돌아오는 길에 눈이 근사하게 내렸다. 어머니는 커다란 새우가 든 핫바를 세 개 사주셨다. 두 개는 조카의 몫이었다. 나는 핫바가 든 검은 비닐봉지를 오른손에 들고 다른 한 손으론 어머니의 좁은 어깨를 감싼 채 집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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