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짱구 이씨와 단둘이 캐빈에서 술을 마시고 있었다. 유쾌했다. 이런저런 옛이야기를 나눴고 주변 사람들의 근황에 대해서 주고받았다. 당연히 요즘 만나는 여자에 관한 이야기도 오랫동안 들었을 것이다. 짱구 이는 항상 사랑하고 항상 애통해 하니까. 양주를 세 병쯤 주문했을 때 내 의식이 멀어지는 게 느껴졌다. 몸이 술집 벽에 진열된 장식물 같았다. 반면 짱구 이씨는 꼿꼿한 장승이나 가파른 벼랑이나 전망대의 망원경처럼 보였다. 그게 무슨 의미인지 깊이 생각해볼 만한 겨를은 없었다. 정신을 차렸을 땐 89만 원 짜리 카드영수증이 내 손에 들려 있었다. 막 깨어난 짱구 이씨는 기억 속의 테이블을 토대로 술값을 꼼꼼하게 계산해보더니 “딱 맞아!”라고 말했다.
…분명 현실은 아니다. 꿈이었을까 환각이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