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 Light

두 시간이나 일찍 안성에 도착했다.

연못에서 고니 두 마리가 다리 하나로 서서 졸고 있었다. 그다지 물에 들어갈 생각은 없어 보였다. 지긋지긋하다는 얼굴을 가끔 깃털 사이에서 꺼내곤 했다. 등나무 잎은 가을 햇살이 바닥에 떨어지기 전에 붙잡아 쥐어보려고 허공에서 이리저리 흔들렸다. 푸른 하늘을 향해 분수의 물줄기가 환희처럼 쏘아 올려졌다.

네가 아니더라도 가을에는 기분 좋은 것들이 가득 널려있다. 그래서 가을에라도 너를 안 본 셈 친다. 진작 보냈어야 할 게 이제 조금 멀어지는구나 한다. 너는 이 가을에 비한다면 아무것도 아니구나 한다.

점심을 먹으러 제6식당에 갔다. 고추장제육덮밥을 먹었다. 간장제육덮밥은 바로 앞 테이블까지 주문을 받고 재료가 떨어졌다. 나는 어차피 두 메뉴 중 하나밖에 먹을 수 없으니 상관없지만, 작은 불행도 작은 행운도 그리 달갑지 않다. 그래봐야 잊어버리기에 힘만 들지.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

Related Posts

파편, 2019년 06월

20190603 (월) 잠이 안 온다. 불안의 발소리가 바닥으로 전해진다. 머릿속에선 나쁜 생각이 극성이다. 거추장스러운 걸 다 잘라내면 둥근…

파편, 2013년 05월

20130501 (수)  학교 운동장에서 나이먹기 놀이 함께하던 내 친구들은 지금 모두 어떻게 살까. 만국기로 봄비가 내려온다. ― 흑석동…

왜 눈은 안 된단 말입니까?

코 수술해볼 겨? 어머니께서 난데없이 물었다. 나는 싱겁게 웃었다. 콧대 세우면 더 편케 살지 누가 알어? 어머니는 웃음기…

즐거우면 너무 무서워

어제는 술자리에 있었다. 유쾌했다. 그러나 순결한 즐거움이 들이칠 때마다 질겁했다. 쓸려 내려가지 않으려고 맞섰다. 수면제를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삼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