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드 페블즈(Sand Pebbles), 나 어떡해(1977 대학가요제 대상)
오늘 밤 잠들기는 단념하자.
긴 불면에 꺾여 체념하고 나니 되려 눈꺼풀이 묵직해진다. 엄마를 냇가에 묻은 청개구리의 주술에 걸린 사람처럼, 잠을 향한 허우적거림을 멈추자 심장이 죄어 오고 손바닥에 열기가 모이더니 졸음이 쏟아진다. 아우성치는 잠을 애써 무시한다. 검은 시간의 변덕을 뿌리친다. 그리고 이편의 시간을 거부하고 지구 반대편의 시간을 쫓는다. 몸은 여기 머물지만 대척점에 끌려간 정오의 의식을 되찾아 깨어 있고자 한다.
오늘치 잠을 버리기로 결심하고 형광등을 켜기까지, 비록 찰나였지만 내 의식은 로그오프 상태였다. 그 순간 나는 뉴욕 메츠 구장에서 야구 경기를 보고 있었다. 가슴에 ‘New York Mets’라고 자수 놓아진 회색 후드티는 잘 어울렸다. ㅂ씨는 옆자리에서 파자마를 입은 채 응원을 하고 있었다. 경기 스코어보다 가지무침처럼 탁한 보라색 하늘이 눈길을 끌었다. 그래도 가지무침을 우물거리는 일과 마찬가지로 거북함에 비해 썩 나쁘지 않았다. 어떤 종교적 기적이 벌어질 것 같은 느낌도 스쳤는데, 그런 기적은 재난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점이 나를 불안하게 했다. 그리고 역시나 보라색 빛줄기가 내 미간 한가운데를 뚫고 지나갔다. 알코올 도수 높은 술을 한 잔 마신 것처럼 몸 전체에 기운이 돌면서 차츰 단단해짐을 느꼈다. 메타포로서의 단단해짐을.
“Pitching for the New York Mets will be mogoon.”
갑자기 들려온 안내방송은 굳이 해석하지 않아도 적절치 않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 이유를 따져볼 겨를도 없이 나는 마운드에 서 있었다. 홈까지의 거리 18.44미터. 공의 봉제선을 만지작거리면서 등 뒤를 둘러봤다. 내야수는 타자와 나를 번갈아 보면서 ‘잘 할 수 있을 거야’라는 표정으로 땅을 툭툭 찼다. 나는 불안을 애써 밀어내면서 큰 동작으로 와인드업했다. 타자의 배트를 살짝 감으면서 포수 글러브로 빨려 들어가는 공을 던지는 것. 목표는 뚜렷하다. 팔꿈치는 유연하게 등 뒤로 젖혀졌다. 미간을 관통해 뒤통수로 길게 이어진 보라색 빛이 상모 깃처럼 허공에 휘돌았다. 좋은 공을 뛰어넘어 훌륭한 공을 던질 수 있다는 자신감이 차올랐다.
그리고 “오늘 밤 잠들기는 단념하자.”라고 중얼거리면서 눈을 떴다. 형광등을 켜고, 컴퓨터 전원 버튼을 누르고, 워드프로세서를 마주한다. 졸리다. 금방 손에 잡힐 듯했던 자신감도 지구 반대편의 것이었나.
지구 반대편에서 흘러와 잠시 머물다 간 메타포로서의 자신감. 나는 사실 후드티가 지독하게 안 어울린다. GMT+09:00 시간대의 나는 늘 좌절감에 시달린다. 누군가 앗아간 자신감의 빈자리에 온전히 내 것인 슬픔이 증식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