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 Light

최근 나는 또 쓸데없는 것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

우리가 얼마나 ‘어둡고 끔찍하고 저주스러운 동시에 활동적인 기억(혹은 과거)’을 갖게 되어야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 것인가. 안다, 정량화할 수 없는 기억에 대해 ‘얼마나’라니! 또 안다, 정량화의 어려움은 여러 가지 문제 가운데 가장 사소한 점이라는 것을. 또한 가능/불가능 여부나 과거의 미래에 대한 간섭 가능 범위를 증명하는 일 등과는 별개로, 이런 고민은 (나의 사랑만큼이나) 가치 없는 일이다.

왜냐하면 나는 오늘에 이르러서도 ‘어둡고 끔찍하고 저주스러운 동시에 활동적인 기억(혹은 과거)’을 갖지 못했기 때문이다. 후(後) 미래에 대한 불안을 상쇄하기 위해선 반드시 현재 혹은 전(前) 미래에 불행을 겪어야 한다니! 그래, 인정한다. 정말 어리석고 멍청하며 우스운 생각이다. 어느 누가 예비군 동원훈련을 기분 전환으로 여기기 위해서(물론 그럴 리 없겠지만) 아우슈비츠로부터의 생환을 소원할까. 대체 어떤 사람이 콩자반이나 연근조림을 맛있게 먹기 위해서 케냐의 극심한 기아를 겪으려 할까.

게다가 내가 경험한 바로는, 어떤 끔찍한 기억(혹은 과거)도 인생을 우습게 여길만한 빌미를 제공하지 않는다. 오히려 곤란하게 만든다. 그것은 한 사건이 ‘표현할 수 있는’ 합리적인 결과들 틈에 숨어 지내다가 순식간에 이해할 수 없는 결과를 만들어낸다. 광주에 도착한 장항선 열차를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매 초마다 정신이 무뎌지지 않게 경계했다면, 이 기묘한 분기점에 ×표시를 해두거나 막을 수 있었을까. 내 생각엔, 쉽게 되지는 않을 것 같다.

그렇다면 거꾸로, 기억(과거)이 현재 혹은 미래의 호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을 수 없다면 세상은 훨씬 더 간소해졌을까. 오늘 달콤한 사탕을 넣어두었다면 아무 때나 달콤한 사탕을 먹을 수 있다. 이 당연한 것으로부터 절대 배신당하지 않는다면, 어느 순간 어느 누구에게도 선의가 오해받지 않는다면, 어제와 마찬가지로 오늘도 (지치거나 질리지 않고) 나는 너를 너는 나를 절실하게 사랑할 수 있다면, 나는 주저하지 않고 노트북을 덮어버리겠다. 인터넷 선을 잘라버리겠다. 지구는 둥그니까 자꾸 걸어 나가서 온 세상 사람들을 다 만나고 오겠다.

그러니까 내가 정말로 하고 싶은 말은, 덜 끔찍한 현재를 만들기 위해서 존재 전체를 걸고 애쓰는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전 우주를 통틀어 최고로 끔찍한 기억(과거)을 갖는 것도, 기억의 영향력을 억제하는 것도, 현재를 절대 나아지게 할 수 없다. 당신도 달려드는 불행을 걷어치우며 씩씩하게 나아가길 바란다. 그래서 훗날 자신이 팽개쳤던 다른 가능성들로부터 용서받고 인정받기를 바란다. 당신을 제외한다면 어느 누가 당신에 대해서 이해하고 용서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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