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 Light

오늘의 열차 차량-좌석 선택은 대실패다.

용산발 17시35분 새마을호 3호차 문이 열리는 순간, 망했다는 걸 확신했다. 역겨운 햄버거 냄새는 그럭저럭 참을 만했다. 하지만 롯데리아 햄버거와 감자튀김을 미친 듯이 입에 욱여 넣으며 떠드는 초딩 남매와 마주앉아(내 좌석을 역방향으로 돌려버렸다) 몇 시간이 걸리는 여정을 견딜 자신은 없었다. 옆자리인 창측 41번 좌석에 앉은 아이 엄마는 나보다 대여섯 살쯤 많아 보였는데, 아이에 대한 큰 사랑을 챙기느라 공공 예절은 미처 싸 오지 못했는지 요란을 떨었다.

“엄마. 서울은 감자튀김이 왜 이렇게 적어?”

“그러게. 군산보다 훨씬 적네. 왜 그럴까? 왜 그런 거 같아?”

정말, 너희야말로 나한테 왜 그럴까? 왜 그런 거 같아? 심지어 앞자리 계집아이가 다리받침을 펼쳐 양발을 쭉 내뻗는 바람에 나는 다리를 한껏 오므리고 있어야 했다. 제길. 새마을호에서 다리도 마음대로 못 뻗다니. 나는 계속 화를 삭히며 빈자리에서 빈자리로 옮겨 다녔다. 그때마다 아이 엄마는 세상에 별 유난스러운 남자가 다 있다는 표정으로 나를 빤히 봤다. 성질을 내고 싶었지만, 우리 엄마가 세상의 갑(甲)이라고 믿고 있을 아이들이 마음에 걸렸다. 결국 승무원을 쫓아가 자리를 바꿔달라고 말했다. 내가 선반에 있던 가방을 끄집어내 칸을 옮기는 동안에도 아이 엄마는 이 남자가 왜 부산을 떠는지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이었다.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

Related Posts

앵두의 여름

여름이 생각날 때 냉장고를 연다. 이 가을은, 그토록 기다리던 가을인데 한복판을 지나려니 돌아가고 싶다. 작은 병에 담긴 저…

뭐가 잘못된 걸까. 뭐를 잘못한 걸까

예쁜 인턴 의사선생님이 나를 보살피다가 자리를 비운 사이에 생각했다. 뭐가 잘못된 걸까. 예쁜 인턴 의사선생님이 내 얼굴에 묻은…

평화로운 열람실

오늘도 대학원 열람실은 평화롭다. 카키 비니 남자는 의자 바퀴가 흔들리도록 다리를 떨고 있다. 노란 점퍼 남자는 의자를 한껏…

두 종류의 그리움

지난 주말, 익산에 다녀오기로 계획했었다. 하지만 삼일절 내내 사무실에 갇혀 프레젠테이션에 필요한 도표만 만들었다. 오후 5시 10분 용산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