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 Light


꿀 퍼먹었으니 꿀잠 자겠습니다, 라고 페이스북에 썼는데 잠이 안 온다. 입 안에서 이세계의 단맛과 이세계의 꽃향이 느껴진다. 그래서 허공으로 떠오른 것일까. 얇은 어둠을 유영하여 책장에서 오규원 시집을 뽑아왔다. 자작나무 껍질을 한 겹 한 겹 벗겨 냄새를 맡듯 오규원을 펼쳐 꼼꼼히 읽는다. 가령 이런 서글픈 사타구니 같은 구절을.


“꿈을 꾸지 못하는 밤이 있다 / 싸움을 망각하고 싶은 밤이 아니라 / 싸움을 포기한 밤이기 때문이다 // 아직도 포기할 수 있는 밤이 있기 때문이다 / 매독에 걸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 오규원, 「빗방울 또는 우리들의 언어 ― 陽平洞 5」, 『왕자가 아닌 한 아이에게』, 문학과지성사, 1978.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

Related Posts

일란성 자매들의 못된 장난

도통 알 수 없는 얼굴이야, 라고 생각했다. 마주 서서 말을 주고받는 내내 하얀 얼굴에 시선을 고정했지만 특징을 잡아낼…

너는 신림동, 나는 흑석동!

신림동 인구가 두 명 늘었다.  조카 1호가 먼저 이사를 왔고 조카 2호도 오월에 온다.  이사 당일에 처음 가…

봄바람의 짓궃은 장난

커튼 자락 슬며시 쓸고 달아나는 봄바람 장난을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낮잠에 든다. 얼마 만에 실눈 떠보니 입 맞추며 오래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