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 Light

20180203 (토) 

H의 결혼식에 못 갔다. 어제 사 온 냉이와 두부를 넣고 찌개를 끓인다. 약 한 봉지를 눈에 띄는 곳으로 옮기면서 남은 걸 센다. 내가 바란 건 행복이 아니라지만 너무 먼 데 누워있다.


20180206 (화) 

대학병원까지 와버렸다. 의사 선생님은 베드에 올라가 누워보라고 하셨다. 나는 몸을 뉘고 니트셔츠를 걷어 올리고 허리띠를 풀고 단추를 풀었다. 차근차근 순서대로. 의사 선생님은 뭘 적다 말고 살짝 큰 소리를 냈다. 안 그러셔도 돼요. 바지 단추를 다시 채우면서 어쩐지 서러웠네.


20180211 (일) 

OLYMPUS OM ZUIKO MC AUTO-W 35mm F2 렌즈를 팔았다. 방학 동안에 가고 싶은 곳이 많았는데. 담고 싶은 것도 많았는데.


20180211 (일) 

매일 두 시간씩 언 강 소리를 들으러 나간다. 가리가리 깨진 얼음이 드센 물숨에 출렁이며 환한 소리를 낸다. 물거품도 소리가 벌어진 곳에서 기척한다. 봄이 오면 다 떠날 것들.


20180214 (수) 

장염에 위액 분비 자극제를, 위염에 위산 분비 억제제와 제산제를 각각 처방받았다. 이것이 내 몸 아이러니.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

Related Posts

노상, 어느 도시를 세우고 무너뜨리고

먼 곳으로 떠나야 한다고 당신이 말했다. 불가피하게, 아주 오랫동안. 나는 당신에게 왜 떠나야 하느냐 묻는 대신, 거긴 단 한 번도…

담배 피우시죠?

“담배 피우시죠?” 미용실 인턴이 내 젖은 머리카락을 탈탈 털면서 물었다. 나는 담배를 곧 끊을 생각이며 조만간 장승배기역 근처의…

살게 하소서!

너의 환후(幻嗅)에 시달린다. 잠을 못 잔 탓인지 속이 울렁거리고 미열이 난다. 몸살은 나를 차가운 파도가 들고나는 개펄에 조심스럽게…

당신의 식욕

“아삭아삭한 오이를 먹으면 속이 시원해 질 듯싶구나.” “새콤한 파인애플을 먹으면 울렁증이 진정되지 않을까?” “아까 할머니가 나눠준 하우스 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