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 Light

코로나19가 유독 지독한 건 온라인 강의 때문이다. 한 주에 네 과목씩 강의동영상을 만들고 나면 살고 싶지 않다. 아니, ‘만들고 나면’이라는 표현은 거짓말이다. 곧장 다음 주 강의 동영상을 준비한다. 대본 작성, 촬영, 편집, 업로드까지 2~3일이 소요되는데 일주일은 7일이다. 어떻게 15주차를 얼추 끝냈는지 스스로 이해할 수가 없다. 넉 달 동안 사람을 다섯 번이나 만난 것도, 외식을 세 번이나 한 것도, 다 기적 같다.

지난 넉 달 동안 온라인 강의 외에는 어떤 기억도 없다. 식료품도 생필품도 전부 택배로 받았다. 택배 기사님을 뵌 적은 없다. 보름에 한 번은 편의점에 들러 담배를 한 보루씩 샀다. 로스만 클릭이 단종됐고, 팔러먼트 하이브리드 스플래시와 말보로 미디엄과 말보로 골드를 피우는데 죄다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나마 메비우스 LBS 옐로우 3mg이 괜찮았지만 일본이 떠오르면 역했다. 그래서 묵혀두었던 글로 미니까지 꺼냈다. 흡연이 유일한 쾌락이라니 정말 속상하다.

얼마 전에는 에어컨을 설치했다. 25년 에어컨 설치 경력을 자랑하던 기사님이 돌아간 뒤에 나사 두 개를 발견했다. 에어컨은 나사 두 개가 없어도 잘 돈다. 에어컨을 켜면 춥고 끄면 덥다. 여름이 심각해지면 썩 괜찮을 것 같다. 후배가 (시집가면서) 물려주었던 이동형 에어컨을 정리해야 할 텐데 엄두가 나지 않는다. 이 덕분에 지난 폭염에도 무사했지만, 이 요란한 물건을 돈 받고 떠넘겨야 한다는 게 별로 안 내킨다. 마음 써준 후배를 떠올리면 생판 남에게 거저 줄 수도 없다. 집에서 물건을 내보내는 일이 가장 어렵다.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폭염이 일상이던 작년 7월에 A가 집으로 놀러 오겠다는 걸 묵묵히 거절했다. 그 순간에는 별 내색 없었지만 속이 상한 모양새였다. 해명이 필요하다는 걸 깨달았을 때는 들어줄 사람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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