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 Light

배제 된 열여섯 살 소년들의, 세계 혹은 역사

박민규, 『핑퐁』, 창작과비평사, 2006.(‘알라딘’에서 정보보기)



‘역사(歷史)’란 알고 보면 아주 단순하다. 센 놈이 살아남는지, 살아남은 놈이 센 놈인지는 확실치 않지만, 아무튼 역사는 ‘센 놈들 다이어리’의 엘레강스(elegance)한 부제거나 역사가가 혼자서 연출·글·목소리 연기를 도맡아 하는 인형극이다. 우리의 적극적인 역사의식(歷史意識)이 고까운 것을 호락호락 놔둘 리 없지만(리플로 강경 대응), 비판적 인식이 이루어지기 이전의 ‘사실’에 대해 모르는 것도 당연하다.

아니라고? 그럼 질문 하나. 백제의 의자왕은 술과 여자를 가까이하다가 660년 나·당 연합군에게 나라를 빼앗긴다. 백제가 멸망하던 날, 무려 삼천 명의 궁녀는 낙화암에서 몸을 던지는데 그중 의자왕이 가장 사랑했던 여자는? 결코 알 리가 없다. 이 사실은 당시 역사가의 선택에 의해서 탈락되었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기에) 이토록 중요한 사실이 왜 ‘역사적 사실’에서 제외되어야 했을까. 어째서 모두 한결같이 “깜빡”해 버린 걸까. 하지만 9월 23일에 방영한 《개그콘서트》 ― 「호구와 울봉이」는 기억하고 있다. 의자왕이 가장 사랑했던 여자는 ‘곽성여대 사체과 00학번 이지연양’이다(?)

좀 더 어리석은 질문 하나 더. 만약 당신에게 탁구 게임 우승의 부상(副賞)으로, 세계를 ‘인스톨/언인스톨’ 할 수 있는 권한이 주어진다면 뭘 선택하겠는가. 선택에 앞서 ‘인류의 역사’ ― “인류가 창안한 문명과 문화를, 철학과 예술, 과학과 종교를, 지식과 진화를, 또 거의 같은 분량의 전쟁과 학살, 침략과 정복, 지배와 핍박, 편견과 오만, 범죄와 폭력, 무지와 야만”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과연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할까. 여기에서도 한 가지 의심을 해볼 수 있다. 우리가 경험하게 될 역사에 전재한 “거의 같은 분량”의 긍정과 부정의 역사를 편집한 이는 누구며, 이 정체불명 ‘역사가’의 주관은 충분히 객관적이고 균형 잡혀있다고 확신할 수 있을까? 절대, 아니오

그럼에도 우리는 이 질문을 반드시 가지고 나와야 한다. 숙고하고, 숙고하고, 박민규에게 대답을 나눠줘야 한다. 그게 ‘핑’이고, 그게 ‘퐁’이며, ‘핑퐁’의 세계관이다.


박민규의 ‘세계’는 역사보다 더 단순하다. 그 안의 작은, 좌우 시력 2.0인 신(神)이 아무리 굽어봐도 만리장성보다 덜 인상적이고 육면체의 바위보다 작은 ‘인류’ 또한 마찬가지다. “스키너 박스”. ― 반응 도구와 강화매개물, 자극 요인에 노출된 실험유기체(인간들)는 세계(스키너 박스)에 피투(被投)되어 스타벅스 커피 한잔을 위해서 움직인다. 자의와 상관없이 던져진 개체는, 그 60억 인류는 무엇을 위해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이러한 자각은(기투·企投) 센 놈이 되어 살아남거나, 살아남아서 센 놈으로 인정받고자 하는 폭력으로 변질되기도 한다. 그 틈에 세상으로부터 “깜빡” 잊힌 열여섯 살 왕따 소년 “못”과 “모아이”가 있다. 이 소년들에게 이 세계는 살만할까? 절대, 아니오.

확실히 세계는 지독하다. 존재가 “깜빡” 잊힐 때 폭력은 늘 가까이에 있다. 하나의 폭력 주체가 사라진 뒤에도 폭력은 다른 주체나 다른 형태로 늘 곁에 있다. 자라던 날개가 떨어져 나갈 때까지 겨드랑이를 맞거나 돈을 빼앗기는 것, 동성 친구의 자지를 잠깐 입에 물고 있는 일은 별로 대단할 것도 없다. 오랜 범죄를 답습한 원조교제 알선도 그다지 충격적이지 않다. 그보다는 “다수결(多數決)”에 따라 움직이는 세계가 더 큰 문제다. 음식 주문도 다수결이고, 왕따도 다수결이다. 개인이 인류의 과반수인 것처럼 침묵하는 이 세상은 과연 유지되어야 할까. 그리고 “세 명의 노인이 (돈과) 세계를 쥐고” 상속과 증여를 계속하는 이 자본주의 세계에, 부도덕한 자유방임(laissez-faire)을 추구하는 세계 속에 우리는 희망을 품어도 좋은 것일까. 육십억의 “개인은 세계로부터 배제되어 있”는 데도 불구하고?


이 소설에서 핑퐁과 역사는 하나다. 에드워드 카(Edward. H. Carr)는 필독서 『역사란 무엇인가』에서 “역사란 역사가와 사실의 상호작용의 과정, 즉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규정했다. 그리고 ‘핑퐁’은 가다듬은 폼으로 ‘자신’을 서로 주고받으면서, “결국엔 폼(form)을 완성”하는 행위(스포츠)다. 이것이 ‘듀스 포인트’로서의 역사다. “1738345792629921 : 1738345792629920, 어김없는 듀스 포인트” 하지만 득점의 기회는커녕 “광활한 보드” 앞에 서보지도 못한 우리들이 “럭키!”라고 감히 외치는 일이 가능할까.

박민규는 주인공의 입을 통해 “왜 아무도 틀리지 않았는데 (세계는) 틀린 곳으로 가는 걸까?”라고 묻는다. 다른 인물을 빌려서는 “생명이란 건 말이다, 스스로의 의지로 스스로를 의지하는 거”라고 말해도 보지만, 그리 힘이 실리지 못한다. 오히려 “너와 나는 세계가 ‘깜박’한 인간들이야.”처럼 대안 없는 독백이 더 큰 공감을 부르고 있다. 그의 상상력은 늘 통쾌하지만 한편, 마술 같은 과정으로 독자를 현혹하는 능력에 비하면 현실 인식은 기존 것에 머무르거나 답습하는 데 그친다. 퍽 안타까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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