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 Light

침묵은 귀가 없다.

나는 독한 침묵이 되기 위해서 숨을 덜 내쉬고 덜 들이쉬고 오래도록 머금는 연습을, 용산 산천동 높은 방 안에서 하고 있다. 그리고 정성껏 침묵이 머물렀던 자리를 둘러본다. 니스 칠이 거칠게 벗겨진 창틀을 쓰다듬거나 못이 박혔던 흔적을 찾아 누런 벽지를 더듬는 일은 내가 좋아하는 것 가운데 으뜸이다. 이것은 일종의 성지순례처럼 내 마음이 반듯하게 다듬어지는 착각이 든다.

내가 (허락을 구하지 못하고) 점거하기 전, 이곳에는 한 할머니가 혼자 사셨다. 이 답답한 방 안에서 그녀는 잦은 신음을 어떻게 삼켰을까. 요란한 우려와 달리 세월은 노인을 손써볼 틈 없이 딱딱한 침묵 그 자체로 만들었겠지. 그날은 아마 지금보다도 훨씬 더 조용했을 것이다. 조등(弔燈)을 보고 모여든 암묵(暗黙)이나 함구(緘口)들이 끔찍한 비명을 지르며 뛰쳐나갈 만큼.

침묵(이 된) 할머니의 아들 부부는 근처에서 ‘유진GF’라는 해물·찜 전문 배달음식점을 운영한다. 여기 해물탕의 육수는 “바다가 입안에 펼쳐진다!” 정도는 아니고, 참 깔끔하고 담백하다. 여러 체인점 중 한 곳이지만 그의 어머니가 침묵으로 터득한 비법 덕이라고 믿고 싶다. 침묵은, 현상의 더께를 걷어낸 눈부신 진리 같은, 멋진 셈법을 통해 언어의 나머지를 버리고 난 뒤 남겨진 가장 중요한 몫 같은, 영혼의 결정이 깃든 마지막 숨 한 줌 같은, 가장 무결한 유언 같은 것이다. 그렇게 나는 믿고 있다. 어설픈 침묵인 나는 아직 귀가 열려있어서 수시로 의심이 들지만, 그리 믿는다.

믿는다, 최소한 11월 한 달간은 내 침묵에 대해서.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

Related Posts

Happy Birthday to me

오늘 생일을 맞은 134,980명(대한민국 인구/365일)에게 다소 미안한 고백이지만, 나는 다세대 주택의 지붕을 때리는 빗소리에 맞춰 킥킥킥킥 웃고 있다.…

목욕탕에 먼저 가 있어

친구 박이 죽었다. 한 달도 더 떠밀려 왔는데 오늘 일 같다. 슬하에 어린아이가 둘. 첫째 아이에게 “아빠 병원…

파편, 2019년 06월

20190603 (월) 잠이 안 온다. 불안의 발소리가 바닥으로 전해진다. 머릿속에선 나쁜 생각이 극성이다. 거추장스러운 걸 다 잘라내면 둥근…

당신으로부터의 추방

  ― 당신, 뭉클하게 좋은 당신. ― 응? 무슨 할 말 있어? ― 그냥. 통화하다가 날 잊어버렸나 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