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작은 비밀을 하나 갖게 되었다.
비밀의 탄생일은 2006년 11월 16일 목요일 오후 두 시로, 일주일 전부터 예정된 일이었다. 그래서 한동안 울렁증을 동반한 식욕감퇴, 의욕부진, 불면증에 시달렸다.
비밀이 태어난 날 새벽, 보일러의 온도를 올리고 가습기를 켠 뒤 책을 조금 읽다가 간신히 잠의 초입에 들었다. 온·습도가 적절한 때문인지 이불에 염색된 산당화(山棠花)도 손톱에 들인 물처럼 고왔다. 하지만 잠의 중심부에는 끝내 들어가지 못했다. 청포묵 같이 부서지기 쉬운 영혼이 침대 모서리에 슬그머니 걸터앉아 턱을 괴고 있는 환각이, 그걸 내가 목격한 것 같은 착각이, 잠을 깬 뒤에도 서늘하게 남아 있었다. 그리고 영혼과 접지가 덜 된 듯 몸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었다. 내 몸이 이렇게 시들어가는구나, 싶었다.
그리고 비밀이 세상에 나왔다. 나쁘지만 나쁘지 않았다. 후련했다. 나는 기도(氣道)를 막고 있던 불안을 토해내고 자리에 다시 누웠다. 내 안에 한 평쯤 여유가 생긴 것 같았다. 잠은 여전히 관용을 베풀지 않았다. 심호흡을 한 번 하고 부모님께 전화를 걸었다. 일상적이되 무엇보다도 중요한 안부를 물었다. 아버지도 되묻고 나서 한 가지를 덧붙여 확인했다.
“믿어도 괜찮겠니?”
“그럼요.”
내겐 선택의 여지가 없다. 앞으로도 계속 확인해 나갈 수밖에요….
그냥, 어서 눈이 내렸으면 좋겠다. 인정할 수밖에 없는 뜨거운 눈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