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 Light

2007년 1월 10일, 광화문 교보빌딩 10층에서 열린 <대산대학문학상> 시상식에 다녀왔다.

시상식장 객석 맨 앞줄에는 백○○ 씨의 부모님께서 시종 미소 짓고 계셨다. 사회자가 수상자의 이름을 호명하자 백○○ 씨가 성큼성큼 걸어 나왔다. 그리고 미리 준비한 종이를 엿보며 떨리는 목소리로 수상 소감을 말했다.

백○○ 씨는 “상을 타지 못했기 때문에 거만해지는 것”이라며 내 얼굴을 쳐다보며 도발했고, “시가 건질게 하나도 없다”라고 말씀하셨다던 안도현 시인을 소환했고, “좋은 시를 보면, 나보다 잘 쓴 시를 보면 억울해서 울었는데, 학교를 가서는 못난 제 실력 때문에 많이 울었습니다.”라고 어려운 고백을 했고, “학사모를 8년 동안 씌워드리지 못한 부모님께 죄송합니다. 믿고 밀어주신 것에 감사합니다.”라며 부모님도 울렸다.

본인의 시만큼이나 말에 낭비가 없는 수상 소감이었다. 시상식을 앞두고 급히 인터넷으로 주문한 회색 바지의 우스꽝스러움에 대해서는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그의 붉어진 눈시울이 개그 바지를 압살하리라고는 정말 상상도 못했다.


시상식이 끝난 뒤, 나는 이정록 선생님께 안부전화를 넣었다.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

Related Posts

너는 맹추처럼

뒷방에 가만히 혼자 누워 어슬어슬한 너를 어루더듬는다. 너는 맹추처럼 자꾸 웃어준다. 다디달다. 어딘가에 있을 진짜 너에게 공연히 죄스럽다.

가을의 고양이와 겨울의 공백

지난 가을, 고양이들이 마당을 떠났다. 나는 자주 계단에 앉아 고양이들을 기다렸다. 무화과 잎이 가지에 상처를 남기며 떨어지고 첫눈이…

파편, 2021년 02월

20210204 (목) 맥북에어 m1(2020)을 장바구니에 가두고 두 달째 고민 중이다. 성능·배터리·가격에 혹하지만 아직까지 역대급 망작으로 보인다.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로…

몽골에서 온 양

고향에서 하영이에게 팔려 매일 내 얼굴만 보며 고통받고 있는 몽골 양 한 마리. 오늘따라 네 기분이 좋아 보여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