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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바 강남 고객지원센터(홈페이지/ 서울시 강남구 역삼동 강남파이낸스센터 26층/ 전화: 1588-5898)에 다녀왔다. 360번 간선버스를 8시43분(흑석역·명수대현대아파트)에 탔고 9시13분(역삼역포스코PS타워)에 내렸다. 역삼역에서 2번 출구를 찾아 헤매느라 개점 시간으로부터 13분 지각했다. 엘리베이터가 26층으로 올라가는 동안, 13분을 1시간 30분 대기로 돌려받게 되었다고 푸념했다. 어제 내린 비를 원망하기도 했다. 비가 쏟아지지 않았다면 하나뿐인 외출용 운동화가 젖지 않았을 테고, 평소처럼 운동화가 뽀송뽀송한 상태였다면 드라이어로 젖은 운동화를 말리는 데 시간을 허비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아니, 내게 외출용 운동화가 두 켤레만 있었더라도.

엘리베이터에 탈 땐 여러 명이었지만 내릴 때는 나 혼자였다. 게다가 고객지원센터에 대기 중인 사람도 없었다. 비 탓에 늦었지만 비 덕에 기다릴 필요가 없었다. 이러니 삶은 살아봐야 안다.



도시바 강남 고객지원센터는 (용산 전자상가에 위치한 대다수 고객지원센터와 달리) 매우 쾌적했다. 접수 공간과 대기 공간을 분리해 놓은 점도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접수 창구가 하나뿐이고 앉아 기다릴 의자가 적으며 상담 데스크도 두 개뿐인 탓에 오후에는 오지 않는 편이 나을 것 같았다. 그래도 수리 접수를 하는 여성직원분은 매우 친절했다. 그 호의 어린 미소를 마주 대한다면 누구라도 이것저것 더 묻고 싶은 충동을 겪을 것이다. 나는 실제로 몇 가지 질문을 했는데, 접수 창구의 여성직원분은 꾸밈없는 미소를 머금은 채 친절하게 대답해 주었다. 접수를 마치고 대기실에서 커피를 뽑아 마시며 15분 정도 어슬렁거리고 있자 말끔한 청년기사님이 나와 나를 호명했다. 나는 상담데스크에 비스듬히 앉아 기사님이 입을 떼기만 기다렸다.

“최대 음량 시 고음을 재생하면 스피커에서 찢어지는 소리가 들린다고 하셨는데….”

청년기사님은 자신의 USB에 담긴 MP3 파일을 내 ‘도시바 포테제 Z830 PT224K-00E00G’ 노트북에서 재생하고는 어디가 어떻게 문제라는 건지 통 모르겠다는 의사를 표정으로 전했다(그는 ‘카라’ 팬인 듯했다). 이미 예견한 일이었으므로 나는 문제 증상을 곧장 파악할 수 있는 음악파일을 다시 재생했다. 《말할 수 없는 비밀: Secret》 OST에서 9번 트랙 <Qing Ren De Yan Lei>의 2분 10초부터 2분 30초 구간이었다. 당연히 (접수하면서 적은 설명 그대로) “스피커 최대 음량 시 하울링 및 고음 파열 증상”이 확실히 일어났다. 이 소리를 들은 청년기사님은 ‘Z830 모델의 슬림·경량화로 인한 공간의 한계와 초소형 스피커가 가진 성능의 한계’에 관하여 설명했다. 나는 소형·경량화의 첨병이라 할 수 있는 휴대전화의 새끼손톱만 한 스피커에서도 이런 현상은 일어나지 않는다고 의견을 말했다. 하지만 청년기사님을 설득할 수 없었다. 휴대전화와 울트라북은 비교 가능한 대상이 아니라는 이유였다. 나는 단번에 무엇과의 비교도 소용없으리라는 것을 느꼈다. 도시바 Z830은 도시바 Z830이다. 타사의 울트라북일지라도 도시바 Z830은 아니다. 그래서 나는 솔직하게 물었다.

“지금까지 이런 증상을 문제 삼은 소비자가 없었나요?”

“네.”

“이 증상은 제품불량 판정의 기준에 못 미치나요?”

“네. 단지 제품의 한계이자 특성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동일 기종에 동일 증상이 나타나는지만 확인하고 싶습니다.”

청년기사님은 엔지니어실에 들어갔다가 바로 나왔다. 강남 고객지원센터엔 Z830 제품이 없었다. 테스트 제품이 다른 센터에 가 있다는 설명을 들었지만 이대로 아무 소득 없이 돌아가기에는 서운한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한 가지 부탁을 했다.

“동일 기종의 동일 증상 발생 여부조차 확인하지 못했는데 제품 불량이 아니라는 말씀을 곧이곧대로 수긍하고 믿긴 어렵습니다. 센터 기준에 제품 불량은 아니라고 하셨지만 ‘증상’이라고 불릴만한 ‘현상’이 있다는 사실은 확인하셨으니 스피커를 교체를 부탁드리겠습니다. 동일 기종에서 동일 증상이 발생하는 걸 확인하고, 교체 스피커에서 동일 증상이 나타난다면, 저도 스피커 문제를 Z830의 한계로 받아들이겠습니다.” (도시바 포테제 z830 구매자 모두가 동일 증상을 경험했음에도 제품의 한계라는 걸 단숨에 납득해 버린 것일까. 아니면 내가 뽑기를 잘못한 것일까. 그것이 너무너무 궁금했다.)

청년기사님은 그러마 하고 스피커 재고를 알아보러 갔다. 재고는 없었다. 외산 노트북 부품은 재고가 있는 경우가 오히려 드물어서 나는 담담했다. 청년기사님은 입고를 요청해 둘 테니 내일 오후에 다시 방문해 달라고 말했다. 단 하루 만에 입고라니. 사실은 이게 더 놀랄만한 일이다. 나는 그러겠다고 대답한 뒤 감사 인사를 했다.

도시바 고객지원센터는 꽤 만족스러웠다. 워낙 험한 소문(“도시바는 또씨발”이라던가)이 많아서 걱정했지만, 사실 상식적인 고객지원이었다. 물론 소비자와 센터 간에 말이 안 통하는 경우도 상당히 많을 것이다. 기업은 이윤 앞에서 독하게 구는 게 당연하니까 소비자가 울화통 터지는 경우도 잔뜩 있으리라. 그래도 한편으로는 이런 의심도 든다. 그동안 삼성이나 엘지에서 떼쓰기 서비스를 받아온 사람들이 상식적인 서비스에 만족하지 못한 건 아닐까?

그런데 나는 이런 쓸데없는 글을 왜 쓰고 있냐. 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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