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 Light


자전거를 타고 13.74km를 달렸다. 집 근처에 닿기도 전에 날이 밝아왔다. 강 건너 건물들은 막 주저앉을 것처럼 뿌옇게 흔들렸다. 차들은 계속 속도를 올리기만 했다. 나는 해가 뜨기 전에 잠들어야 한다는 일념으로 페달을 쉬지 않고 밟았다. 밝아오는 미래는 내가 감당할 수 없는 무엇이다.

얼마 전 사고 덕에 내 비중격이 원래 휘어 있다는, 평생 모르고 살아도 괜찮았을 사실을 알게 됐다. 비중격(⿐中隔)이란, 코(⿐)의 가운데(中)에서 사이를 벌려주는 벽(隔)이다. 이것이 곧지 않고 휘어져 있으면 ‘비중격 만곡증(⿐中隔 彎曲症)’이라고 한단다. 증상이 심하면 두통, 집중장애, 비염 등이 생긴다고.

나는 지금 코의 칸막이가 어느 편으로 기울었는지 모르던 시절보다 불행한 거 같다. 영원히 비중격이란 이름을 모르고 살 사람들이 부럽다.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

Related Posts

크리에이티브(Creative)

이 빠지고 실금이 뿌리 내린 머그컵에 설록차를 담아 후우 후후 불며 크리스마스 캐럴을 듣고 있다. 아이의 콧방울처럼 탄탄한…

파편, 2013년 06월

20130601 (일) 김흥식(서해문집 대표)의 글 「무라까와 하루키 씨에게 경의를 표하며」를 지금서야 읽었다. 유치하고 졸렬하다. 지지리 못나서 내가 다…

군대에서 보내는 위문편지

위문 편지 찬 바람이 두서없이 불어오는데 너무 별일 없으신 건 아닌지 걱정입니다. 이곳 구파발 예비군 훈련장도 무탈합니다. 새벽…

파편, 2017년 08월

20170801 (화) 카스퍼스키(Kaspersky)가 무료 백신을 출시하다니. 지난달에 ESET 5년 결제했는데…. 어차피 나도 VPN, 신용카드 정보 보호, 맥·스마트폰 보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