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 Light

대략 18개월 전에 쓴 단편소설 「사랑의 대부분」을 다시 꺼냈다. 나는 이 글 가운데 사랑에 관한 해설을 특별히 아낀다. 누구나 알고 있지만, 누구나 표현할 수 없는 서술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살펴보니 전체 얼개가 엉터리다. 주인물인 남자가, 전혀 의미하는 바가 없는 부조리한 상황·공간 속에 던져진다는 건 어떻게든 우겨본다지만, 진짜 문제는 그가 살아 있는 인간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는 부조리한 상황 속에서 절망 혹은 갈망하지 않는 인간이다. 실존을 포기한 인간이 사랑으로 말미암아 울음을 터뜨린다는 결말은 진정 나조차 믿기지 않는다.

여기서 질문. 그때는 왜 몰랐을까.

나도 정말 어지간히 발전이 더딘 인간이다.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

Related Posts

봄여행 1일

06시40분 흑석동 동작구을 투표 제19대 국회의원선거일. 나는 투덜거리며 언덕을 오르고 올라 투표소를 찾았다. 지난 서울시장 선거 때부터 바뀐 투표소다.…

어느 소셜네트워크 서비스 눈팅족의 고백

나는 자기애(自己愛)가 다양한 형태로 진열된 곳에서 불안을 느낀다. (“엄마, 엄마는 내 콧물을 빨아서 귀하게 키워줬지만, SNS에서 자기애는 주로…

한국에 놀러 와요, 니가

독일에 놀러 와요. S는 말했다. 나는 슬며시 고개를 저었다. 나는 독일에 갈 리 없다. L과 K는 어쩌면 독일에…

파편, 2021년 08월

20210805 (목) 예스24에서 “젊은 작가 투표”라는 걸 한다. 열여섯 명의 작가를 후보로 세웠는데, ‘선정 기준’이 “2011년 이후 등단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