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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콩나물의 노래》(극단 하랑)

20170218 (토) 15:00 대학로 ‘아트원씨어터’ 3관에서 연극 《콩나물의 노래》(극단 하랑)를 관람했다. 이 연극은 일본의 유명 희곡작가 ‘오가와 미레이(小川未玲)’의 작품이라는데… 연극 상식 없는 나는 당연히 모르는 작가다. 홍보용 책자에 적힌 그녀의 이력은 인상적이었다. “일본의 근현대 유명 희곡작가 이노우에 히사시(井上ひさし) 선생의 비서”이자 “애제자”라는 부분. 이 ‘비서’라는 것이 일본식 도제(徒弟)인지 아니면 비서로 일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희곡이 쓰고 싶어진 것인지 궁금했다. 하지만 나는 쫄보라서 작가와 마주 서서도 묻지 못했다. 아무튼, 스승과 제자 모두 “다소 무거운 주제가 될 수 있는 것들”을 다루되, “인간의 소소한 정서”에 “세세하고 자연스럽고 유니크한 스타일”을 입힐 줄 아는 작가인 모양이었다. 이건 내가 대충 짐작하는 ‘일본적’이라는 의미처럼 보였다.

대학로 ‘아트원씨어터’는 마로니에 공원 뒤편에 있어 쉽게 찾을 수 있었다. 매표소 직원은 내 이름과 연락처를 확인하고 예매표를 건네면서 “3관은 5층에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나는 “5층요?”라고 되물었다. 엘리베이터는 열 사람을 들어 나르기도 힘겨워 보였다. 나는 계단으로 건물에 올랐다. 혈액이 잘 순환 중인 게 느껴졌다. 5층 3관 객석에 들어가기 직전, 화장실에 가고 싶었다. 자리 확인을 돕던 여자분은 2층 로비에만 화장실이 있다고 친절하게 알려주었다. 다시 내리락 오르락.
표 한쪽을 떼어주고 객석에 들어갔다. 그런데 (말 그대로) 내 자리가 없었다. D열20번 좌석이 있어야 할 곳에는 열과 열을 오갈 때 밟는 간이 디딤 계단이 덜렁 놓여있었다. 나는 자리 확인을 돕던 여자분께 간이 디딤 계단을 가리키며 “제 자리는 여기예요?”라고 물었다. 그 역시 ‘좌석이 없다!’는 사실에 당황한 눈치였다. 그는 확인하고 돌아와 D열19번 좌석에서 관람해달라 부탁을 했다.

공연시간은 제법 긴 편(2시간 가까이)이었지만 집중을 해서 본 덕에 시간의 결을 느끼지 못했다. 연극은 ‘유일한’과 ‘이미자’가 함께 콩나물 가게에서 콩나물 통을 씻으며 시작된다. 가출 중인 유일한은 단골 콩나물 국밥집을 운영하는 이미자의 소개로 일을 막 시작한 참이다. 이미자는 콩나물 가게의 사장인 박만수에 대한 연심으로 매일 드나들며 일을 돕는다. 수년 전에 사별한 사장 박만수는 새벽까지 콩나물을 돌보느라 몸을 내려놓으면 바로 졸기 바쁘다. 매일 고단한 박만수에게는 혼수 준비로 바쁜 여동생 박영자, 사진작가가 되고 싶었던 백수 남동생 박철수, 사별한 아내 사이에서 낳은 아들 박정수가 있다. 그리고 박만수의 유일한 친구인 유병주가 있다. 그 외에도 어머니 문옥순, 죽은 아내 정경숙, 맞선 상대인 이춘자가 등장한다. 이렇게 많은 인물이 ‘콩나물’로 엮여 무대 위에서 움직인다. 배우 남명지의 1인 3역을 고려하더라도, 무려 7명의 등장인물이 한 무댕에서 성격대로 제각각 움직이는 것을 지켜보는 건 매우 즐거웠다. 몇 년 전, 극작가 겸 연출가 겸 배우 겸 감독인 ‘미타니 코우키(三谷幸喜)’의 연극 《너와 함께라면》을 봤다. 큰딸의 40살 많은 남자친구가 가족 앞에 나타나 결혼 승낙을 받는 코믹 극으로, 예닐곱 명이 한 무대에 등장한다. 아버지(코이소 쿠니타로), 어머니(코이소 요리에), 큰딸(코이소 아유미), 큰딸의 남자친구(기무라 켄야), 큰딸의 남자친구의 아들(기무라 겐야), 큰딸을 짝사랑하는 종업원(와다 하지메), 작은 딸(코이소 후지미)가 한 무대에서 성격을 드러내며 움직이는 광경을 지켜본 건 아주 즐거운 기억이다. 그런데 (그간 내가 객석에 앉아 구경한) 국내 연극에서는 이런 장면을 보지 못했다. 왜일까. ① 내가 관람한 국내 연극의 수가 적어서 흔한 씬임에도 못 본 것이거나 ② 국내 연극의 제작 여건 상 예산이 부족하여 ○인 이상 출연이 불가능하다거나 ③ 국내 관람객 대부분이 다수의  등장인물을 산만하다 여긴다거나 ④ 극작가와 연출가가 다수의 인물을 통제하는데 어려움을 느끼거나. 이 중 한 가지가 이유 아닐까? 아무튼, 관람 전에 김을 뺄 수도 있으니 더 자세한 줄거리는 생략. 아무튼, 따뜻하고도 쓸쓸한 이야기였다는 것.

공연이 끝나고 번역가 박순주와 작가 오가와 미레이가 무대에 올라왔다. 객석에서 여러 질문이 나왔지만, 그중에서도 ‘작가의 입장에서 본 일본 연극과 한국 연극의 차이점과 그 인상’이 관객의 가장 큰 관심을 끈 것 같다. 오가와 미레이는 ‘한국 배우의 동적인 연기, 그리고 자연스러운 스킨십이 낯설고 재미있었다’는 요지의 말을 했다. 원작은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일본영화와 비슷한 느낌이었던 모양이다. 일본의 날 극과 완전한 한국적 번안 극 중 어느 것이 낫다,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 차이를 내가 직접 확인할 방도도 없을 것이고. 그래도 우리에겐 수 없이 고쳐 번역한 이 작품이 더 재미있겠지요?

(+) 연극 《콩나물의 노래》(극단 하랑)의 배역은 신담수(박만수役), 황인보(유병주役), 박새라(이미자役), 이서경(박영자役), 김성훈(유일한役), 최경훈(박철수役), 남명지(문옥순&정경숙&이춘자役), 공부안하고매일나가노는(정수)가 맡았다. 배우 ‘이서경’만 이름이 마구 진한 이유는, 참 예쁘고 발성 좋고 연기도 잘했다. 한일 짤순이 열 대 사주고 싶을만큼. 번역자 박순주에게 ‘톡’ 해서 소개해 달라 떼쓰고 싶을 만큼.

(+) [컬처포토] 변해가는 세상 속 한 가족의 이야기, 연극 ‘콩나물의 노래’(뉴스컬쳐) : 뉴스컬쳐의 공연 사진 중에서 줄무늬 원피스와 핫핑크 셔츠를 입은 배우가 ‘이서경’이다. 롤 와드 박는 심정으로 링크를 남겨둔다.

(+)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 부근에는 ‘포켓몬 고’의 ‘포켓스톱’이 ‘개많았다’. 신규 포켓몬 80마리 업데이트가 된 직후라서 스마트폰을 보며 서성이는 사람도 많았다. 하지만 ‘흑석동을 벗어나면 중증근무력증에 걸려 픽 고꾸라지지 않을까 불안해지는 병’을 앓고 있어서 모든 포켓몬의 영원한 행복을 빌면서 흑석동에 돌아왔다. 아쉽다.

미스터 브레인워시전(展): 인사동 아라모던아트 뮤지엄.

미스터 브레인워시전(Mr. Brainwash展)에 다녀왔다.
인사동 거리에는 여전히 사람이 많았다. 몇 년 전과 달라진 거라곤 호객꾼뿐이었다. 어린 호객꾼들은 한복을 걸치고 외국인만 골라 붙잡아 세우며 조급하게 굴었다. 여기서 한복은 흥정바치의 유니폼인 것 같았다.
어렵사리 찾아간 아라아트 뮤지엄도 사람이 넘쳤다. 혼자 구경 나온 사람은 나 하나뿐인 것 같았다. 관람객은 서로서로 사진을 찍어주느라 분주했다. 일행 중 하나가 작품을 등지고 서면 누군가는 셔터를 눌렀다. 나도 사진이 나의 사명인 것처럼 열심히 찍었다. 그래도 내 모습은 한 장도 남기지 않았다. 몇몇 커플은 사진 한 장만 찍어달라고 내게 말을 걸어왔다. 나는 그때마다 주저앉아 다리가 길어 보이도록 찍어주었다. 그중 한 커플은 “저희도 찍어드릴까요?”라고 물어왔다. 나는 솔직하게 답했다. 부질없어요, 라고. 내가 전시품을 사진으로 남기는 동안 약빠른 치들은 다짜고짜 프레임 안으로 뛰어들어 포즈부터 잡았다. 나는 물러나지 않고 그들을 사진으로 채집했다. 그들이 내 사진의 하자로 영원히 살도록. 프레임 바깥으로 이어진 시선, 그 행복의 궤적이 불운까지 가 닿았을 때 이 사진 한 장이 어떤 전조가 될 수 있도록. 하지만 내가 가만히 드러내는 이 위악들이 내 몰락의 빌미가 될 것이라는 게 더 명백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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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브리씽 머스트 고 (Everything Must Go,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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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원작은 레이먼드 카버의 짧은 소설인 <춤 추지 않으시겠어요?>라는데, 그리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원고지 30매 정도인 소설에는 술 취해 마당세일 중인 남자와 한 부부가 등장할 뿐이다. 모티프가 된 원작소설은 검색만 하면 간단히 찾아볼 수 있다.

나는 매일 막다른 나를 본다. 어제의 성취는 내일의 성공을 보장해주지 않으며 오늘도 승계되지 않는다. 그래도 닉(윌 페렐)에 비하면 상황이 나은 편이다. 부사장직에서 해고를 당한 날 아내는 닉의 짐을 마당에 버려두고 떠났다. 회사는 자동차(와 실린 개인 짐까지)를 빼앗아 갔다. 닉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마당에서 지내거나 떠나거나. 정말 멋진 노후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누구보다도 착한 사람이라는 건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 원치 않더라도 지난 시간은 냉정하게 등을 돌렸다.
그래도 고등학교 동창 딜라일라(로라 던)는 그의 청춘을, 청춘의 파편을 기억한다. 그녀는 파티 때 자신을 구해준 닉의 영웅담을 이야기 하고 묻는다. “이거 기억 안나?” “응.” “난 기억해…. 넌 착한 마음을 가졌어. 그건 변하지 않아.”
그래, 우리가 평생 부은 적금을 단번에 잃어버리더라도 착한 마음 같은 건 쉽게 변하지 않는다. 하지만 결국 우리가 예전과 다름없이 약하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가 아닐까. 그럼에도 닉은 괜찮아질 거다. 모든 게 꽤 잘 되고 있다고 믿는 것 외엔 딱히 다른 수가 없으니까.
“저기… 모든 게 꽤 잘 되고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어. 그리고 내 물건들을 다 팔고 있어. 내 쓰레기들. 기분이 상당히 좋아. 모든 걸 없애고 있어. 캐서린, 어쨌든 네가 준비되면 전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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