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 Light

20140308 (토)

조금 보수할 생각이었다. 지금은 모든 문장을 새로 쓰고 있다. 불과 두 해 전에 쓴 소설인데도 도저히 눈 뜨고 봐줄 수가 없다. 얼마나 더 늙어서 쓴 소설이어야 다시 주워 고치지 않아도 될까. 일단은 좀 더 늙어보자.


20140319 (수)

연극 《헤르메스(Hermes)》(나온씨어터). 연출 김태웅, 극단 우인, 출연 이승훈(남건 역)·강말금(유정숙 역)·김유진(유가인 역)·김보희(김성미 역)·김문성(전상국 역)·이재훈(무대감독 역)


20140320 (목)

오늘 해가 봄볕을 거둬가기 전에 걷고 싶다. 너의 구호에 맞춰 손을 잡고 어깨를 감싸고 멈춰 서서 끌어안고. 수습할 수 없게 사랑하고. 하지만 네 멋진 미소가 나를 겪는 동안 몹시 뒤틀려버릴 걸 생각하면 마냥 내 기분만 헤아릴 수 없다.


20140320 (목)

J 선생님께 소설 두 편을 보냈다. 그리고 전화를 걸어 “정말 재미없으니 각오해 주세요.”라고 부탁드렸다. 선생님은 오월처럼 타일렀다. 어디선가 꽃가루가 날아오는 것 같았다.


20140323 (일)

새신랑 K에게서 카톡이 왔다. 나는 K가 발리에 있다는 걸 실감할 수 없었다. 그래도 가까이 없다는 건 확실히 감각할 수 있었다. 나는 K에게 언제 돌아오느냐고 물었다. K는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대답했다. 그제야 부러웠다. 어디를 가든 나는 어서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왜 그랬을까. 나는 잠시, 내가 단 한 번도 행복한 적이 없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20140325 (화)

불필요한 말, 형용사 따위를 쓰지 말 것. 그것은 아무것도 나타내는 것이 없다. ‘몽롱한 평화의 나라’와 같은 표현을 사용하지 말 것. 그것은 이미지를 흐리게 한다. 그것은 구체적인 것과 추상적인 것을 혼돈케 한다. 그것은 자연스러운 대상물이 항상 적당한 상징이라는 사실을 작자가 인식지 못하는 데서 오는 것이다.

추상적인 말을 두려워할 것. 이미 훌륭한 산문으로 쓰여진 것을 서투른 시로 되풀이하지 말 것. 작품을 길게 쓰려 함으로서 말할 수 없이 어려운 기교의 좋은 산문이 가지는 곤란을 피하려 해도 현명한 독자는 속지 않는다고 생각할 것. 오늘 전문가가 싫어한 것은 일반 독자들은 내일이면 싫어할 것이다.

시의 기교가 음악의 기교보다 더 단순하다고 생각하지 말 것. 또는 적어도 보통 피아노교사가 피아노기교에 소비하는 것과 같은 노력을 시의 기교에 소비하기 전에 전문가를 만족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말 것.

할 수 있는 한 많은 훌륭한 예술가들의 영향을 받을 것. 그러한 영향을 솔직히 인정하든가 그렇지 않으면 그것을 감추려 하는 품위를 지닐 것. 그 영향이라는 것이 당신이 존경하는 어느 한두 시인의 특별히 가식적인 어휘를 씻어 버린다는 것을 의미하게 하지 말 것.

장식적인 말을 사용하지 말든지 그렇지 않으면 훌륭한 장식적인 말들을 사용할 것.

― 에즈라 파운드, 「시의 용어」, 『지하철 정거장에서』, 민음사, 1995.


20140329 (토)

오로지 벌을 받기 위해 몸이 주어진 사람처럼. 나는. 또.


20140331 (월)

꽃은 꽃답게 떨어지는 법에 고심한다. 파리한 꽃잎 한 장을 뒤집어쓰고 망연히 울어버리기엔 너무나 당연한 일이므로 차분하게.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없으므로 천연덕스럽게.


20140331 (월)

맥도날드 감자 튀김과 콧수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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