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 Light

20190316 (토)

대략 6개월 만인가? 학교 기숙사 식당에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찬밥 한 덩어리를 어묵볶음과 미트볼조림과 깍두기, 그리고 우거지 소금국에 먹었더니 생이 이렇게 비참할 수가 없다. 여유가 아무리 없어도 밥만큼은 그냥 먹지 말고 작은 기대라도 갖고 먹자.


20190319 (화)

그가 얼마나 외로운 사람인지 안다. 외로움은 죽음에 이르는 병이 아니라는 것도 안다. 외로움 앞세워 우리에게 하려던 그 일을 당장 그만두라.


20190319 (화)

이 길 앞 어디쯤에서 교통사고가 났는가 보다. 사람이 다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버스가 17분 넘게 움직이지 않는다. 당연히 언제 달릴 수 있다는 기약도 없다. 당장 수직이륙해서 날아가도 시간이 빠듯하다. 기껏 여기까지 왔는데 휴강 연락을 돌려야 할까.


20190320 (수)

미래의 나야, 또 잊고 같은 실수를 할 거 같아 글 남긴다. 흑석동 청기와 뼈다귀 해장국은 절대 먹지 마. 너는 숟가락을 내려놓는 마지막 순간까지 인간의 존엄성에 대해 생각했어. 비록 위(胃)의 아우성에 굴복했지만, 위도 니글니글한 승리에 불과하다는 걸 금방 깨달았지. 첫술에 못 일어나 미안해.


20190323 (토)

손톱 끝 초승달 하나 깨졌네.


20190325 (월)

방방 노래연습장에서 한 곡 뽑고 났더니 일행 중 하나가 “너무 잘 부르려고 하지 마.”라고 말한 게 (몇 달 전 일인데도) 자꾸 떠오른다. 좋아하는 노래는 잘 부르고 싶지 않나요? 노래 열심히 부르기 트라우마 생길 듯.


20190325 (월)

난생처음 마라탕을 먹어봤는데, 우리 시조님은 중국음식이 입에 안 맞아서 고려로 온 게 분명하다.


20190325 (월)

간밤에 꽃봉오리가 틔었을까 봐 카메라를 매일 넣어 다닌다. 오늘 자고 일어나면 질긴 겨울이 툭 끊어졌을 거야. 이렇게 믿으며 번번이 렌즈만 씻는다.


20190326 (화)

홍매화를 담아두려고 기나긴 안성 여정에 카메라를 짊어졌는데 이 교수님을 만나는 통에 실패했다. 나란히 걷다가 홍매화에 홀려 달려나가면 놀라실까 봐 조용히 지나쳤다. 몇 발걸음만 조금 느리게, 느리게.


20190329 (금)

십오 년 전쯤 어느 선생님께서 명망 있는 가수의 흉을 본 일이 있다. 그 가수는 자기 배우자와 긴 친분이 있어 자연스레 왕래하는 사이라 했다. 하지만 도무지 예의가 없다며 피로한 표정을 지었다. 지금, 그의 노래를 듣고 있다. 좋다. 그런데 오래전 들은 나쁜 평판 한 줄이 여태 날 내버려 두지 않는다.


20190328 (목)

조금 늦었지만, 화풍난양(和風暖陽) 홍매화를 붙잡았다. 비 소식이 들려온다.


20190330 (토)

아주 못된 방식으로 쓸쓸함을 드러내고 있다. 도무지 먹을 새가 없는데 음식을 자꾸 사들인다. 시장이나 마트에서 아무거나 집어 든다. 인터넷에서 대충 골라 오늘 주문하고 내일 받는다. 이미 한계에 다다른 냉장고에 자리를 만들어내고 쟁여둔다.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

Related Posts

무화과는 지네 운수조합 사무실

얼추 익은 무화과를 거둬들였다. 하루 더 나무에 매달아두고 싶었지만 나와 새는 해마다 무화과 수확 시기를 두고 눈치를 살펴왔다.…

골목길에 차린 저녁 밥상

집 앞을 산보하며 낮과 밤을 반죽해 고른 저녁을 골목에 채워두었더니 지나는 이웃마다 뭘 준다. 169번지 아주머니는 장바구니에서 순두부를…

여름으로부터 겨울

여름 내내 문을 닫지 않았다. 그 문으로 열기가 들어왔고 아무것도 나가지 않았다. 나는 내 몸을 돌보는 일에도 힘이…

미지의 것으로 영원히 종결된 당신

가로수 그늘은 여기에서 끝난다. “자외선은 상처의 주적이에요.”라고 말하던 피부과 의사 선생님의 엄중한 표정이 떠올랐다. 남쪽에는 있는 강을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