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어떤 곳일까. 내가 전해 들은 북한은 참에 가까울까.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DPRK)은 의심할 여지 없이 부패한 전체주의 독재국가다. 감시와 통제 속에서 심각한 인권 유린이 일어나고 있다는 걸 의심한 적 없다. 하지만 북한에 기댄 반공을 권력 유지 수단으로 이용해 온 정치 낭인들의 선동적 구호를 비판 없이 받아들여도 좋을지 모르겠다. 공산 독재와 변별되는 사상적 사회주의(社會主義, socialism)의 머리에 붙인 뿔은 떼어졌다지만, 최초의 이상마저 아직도 학문적인 논의 바깥에서 ‘빨갱이’로 통칭하므로 무엇 하나 드러내어 긍정할 수 없다. 예를 들어, 1946년 ‘친일파, 민족 반역자에 대한 규정’을 채택하여 일제강점기 친일 행위자들을 정치적·사회적으로 청산한 것은 (권력의 목적과 필요에 의한 것일지라도) 남한보다 낫다. 그 외에도 우리가 부러워해야 할만한 게 있지 않을까? 핵무기? 미사일과 로켓 기술? 보전된 언어? 인공지능 바둑 소프트웨어의 우수성? 기예단의 예술적인 성취? 사실 핵무기와 로동 미사일을 제외하면 우리가 뭘 칭찬해도 그리 좋아할 것 같지 않다. 하지만 우리가 간과하고 있는 무언가가 있으니 이 괴랄한 체제가 유지되고 있는 게 아닐까.
며칠 전 아버지와 어머니께서 북한이라는 미지에 가셨다. 그리고 금강산을 둘러보고 3월 23일에 무사히 귀환했다. 동네 사람들이 함께 나선 여행이지만 나는 적잖이 걱정하기도 했다. 그러나 아주 쓸모없는 걱정이었던 모양이다. 부모님은 여전히 들뜬 기분으로 내게 여러 이야기를 쏟아냈다. 그중 특기할 만한 증언의 내용을 요약해 보자.
- (혀를 차며) 북한 사람들은 새카맣고 삐쩍 말랐다.
- 남한 사람들 살이 뽀얗고 토실토실 하다는 걸 그제야 알겠더라.
- (혀를 차며) 가끔 한두 마리씩 보이는 소(牛)도 먹지 못해 갈빗대가 드러나 있더라.
- 현대아산에서 운영 중인 식당에서 파는 한정식엔 뽀얀 사골국물이 나온다. 그건 분명히 남한 거다. 삐쩍 곯은 북한 소로는 이런 기름기가 나올 리가 없다.
- 북한 군인의 솜 모자는 반나절만 써도 목 부러지겠더라.
- 관광이라더니 온통 돌뿐인 산을 기어 올라가서 기어 내려왔다.
- 커다란 바위에 새겨져 있는 글귀: “위대한 어머님의 사랑 / 효성 어린 좁쌀 한 말 / 앞에 놓고서 / 강반석 어머님은 / 말씀 하셨네 / 나라 찾은 크나큰 / 위업을 위해 / 생명도 가정도 바쳐야 함을 / 아 위대한 어머니 사랑 / 하늘땅에 비기랴 어머니 사랑 / 강반석 어머님 탄생 70돐 기념 / 1962.4.21” (강반석은 김일성의 어머니 이름이다)
- 소변은 1달러, 대변은 2달러.
- 그 화장실 옆에서 쪼그려 앉아 북한 사람들이 밥을 먹는다.
- 그 주변에서 한 여자가 괭이로 돌밭을 일구고 있었다.
- 원화(₩)를 달러($)로 바꿔 달라고 싹싹 빌며 따라오는 사람들이 있었다. 환차익이 좀 있는 모양이다.
- 2달러짜리 ‘깨 과자’와 3달러짜리 북한 지도 손수건을 사 오셨다. 깨 과자는 제사에 올리는 밀가루 과자에 깨가 두어 개씩 뿌려져 있다. 손수건은 대한민국 국립공원에서 판매하는 것과 똑같다. 빨간색에 흰색 프린팅, 그리고 몇몇 지명들이 쓰여 있었다. 그런데 손수건 한쪽 구석에 ‘MADE IN KOREA’가 쓰여 있다.
- 갈 때와 올 때 모두 침대칸에서 주무셨다고 한다. 침대칸은 2만 원 정도 추가 비용이 발생한다. 일종의 패키지여행이라서 일반 칸을 이용했는데, 차량에 침대 칸이 많이 비어 있어서 슬그머니 들어가 주무셨다고 한다. 그러다가 잡혀가시면 어쩌려고.
- 쓰고 남은 달러를 내게 주셨다. 외환은행 가기 정말 귀찮다. 그런데 현재 환율이 958.63원이네? 며칠 전보다 8원정도 올랐다. 1천3백 원까지 기다려봐?
금강산 관광 후기를 풀어내는 동안 부모님은 “총 맞아 죽을까 봐”라는 표현을 아낌없이 사용했다.
“북한 사람들이 총 맞아 죽을까 봐 꼼짝을 못 하고 서 있더라.”
“총 맞아 죽을까 봐 그런지 길거리에 쓰레기 하나 없더라.”
부모님께서는 북한 인권 유린에 대해 ‘자칫 총 맞아 죽는 것’으로 은유하고 계셨다. 하지만 관광지에서 스친 북한 사람들에 대해서는 측은한 마음을 아끼지 않았다. 나는 소도 굶는 북한의 물리적 위협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미국의 초대 국가정보국장인 존 네그로폰테(J. Negroponte)가 “북한이 핵무기 개발을 완료하였다는 자체의 주장은 진실일 확률이 높다고 판단한다(The U.S. assesses that North Korea’s assertions it has developed nuclear weapons are probably true)”고 말했지만, 북한은 여전히 체제를 유지하기도 어려워 보인다. 그들이 남한을 무력으로 통일하기 위해서 연합군을 무찌르고 미국에 핵폭탄을 떨어뜨릴 거라는 생각은 도무지 들지 않는다. 대한민국 국군의 정신교육 자료에서 주장하듯이, 북한이 30년 이상 묵은 노후 무기로 진격(대남침전략)했을 때 남한이 30분 이내에 함락된다면 우리 군대는 왜 존재하는 것일까. 냉전 수구적 사고를 계승하며 남북 관계의 긴장감을 높이기 위해서 애쓰는 이들이야말로 북한에 기생하는 실재적 친북 세력이 아닐까. 무엇이 진실인지 판단하기에 나도 우리도 아는 사실이 너무 없다. 답답하게도.
덧. 북한의 오늘이 궁금하시면 링크(A, B)를 누르세요. flickr 앨범으로 연결됩니다. 부모님의 금강산 관광 사진도 기분이 내킬 때 올려보겠습니다. 별로 관심 없겠지만. 아참. 아버지께서 로또 4등 되셨어요. 상금은 6만 원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