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대한민국 총인구는 48,517,871명(통계청)이다.
영화 《왕의 남자》에 1,200만 관객이 모였다. 더듬더듬 ‘엄마’만 소리 낼 줄 아는 아가들 빼고, 귀 먹먹해서 고요가 더 친숙한 사람 빼고, 눈 어둑해서 세상의 껍데기에 무관심한 사람 빼고, 부엌에서 물 한 대접만 떠와도 삭신이 어리어리한 분들 빼고, 숟가락 놓자마자 나 밥 굶겨 죽이려 한다고 소리 지르는 분들 빼면… 볼 사람은 다 봤다.
엄청난 관객들이 하나의 영화를 찾아 스크린 앞에 모였지만, 그들은 각기 다른 영화를 본다. 자신이 앉은 현실의 자리에서 영화로 제시된 시대, 권력 구조와 이동, 이성애와 동성애, 고단한 광대의 생과 충동, 연출의 디테일, 내러티브의 짜임, 이미지와 상징, 그리고 이준기를 다양한 방식으로 본다. 사실상 모든 ‘보는 일’이 그렇다. 관람(觀覽)은 ‘보다’를 뜻하는 한자가 두 번이나 쓰인다. 모든 프레임마다 시각이 좁아지는 일에 경계하며 시선을 유지해야 한다. 이러한 각성 이후로 영화 보는 것이 힘에 부친다.
조금은 전주까지 따라나서고 싶은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방에 누워 드라마 《황태자의 첫사랑》을 보고 손톱에 봉숭아 물이나 들이는 일정을 택했다(첫눈이 올 때까지 봉숭아 물이 안 빠지면 사랑도 이루어지니까). 200자도 안 되는 건조한 시놉시스를 줄줄이 읽고 실패가 기본값인 영화를 선택해 일정을 짜야 하는 노고. 버스·열차·택시에 몸과 짐을 싣고 내리는 고난. 짐을 싸고 풀고 싸는 수고, 아쉬움만 쌓게 될 선택에 대한 후회. 이 모든 결말을 예감하면서도 뛰어들어 즐길 수 있는 사람은 정말 존경스럽다. 나는 우주가 소멸할 때까지 영겁회귀(永劫回歸)를 시켜줘도 제대로 못 할 것이다.
그래서 J씨의 여행 사진을 얻어보면서 제7회 전주국제영화제의 무드만 깊이 들이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