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 Light

상상력으로 어제를 돌파하라

이기호, 『최순덕 성령충만기』, 문학과지성사, 2006.(‘알라딘’에서 정보보기)



1979년 10월 26일, 중앙정보부 부장 김재규(金載圭, 1926.3.6~1980.5.24)는 궁정동 만찬회 석상에서 대통령 박정희(朴正熙, 1917.11.14~1979.10.26)를 권총으로 쏜다. 이로써 1961년 5월 16일부터 무려 18년간 지독하게 이어진 유신독재가 끝난다. 하지만 중앙정보부가 아닌 육군본부로 이동한 김재규는 허망하게 체포되고, 1980년 1월 육군고등군법회의에서 ‘내란목적살인 및 내란미수죄’로 사형 선고를 받은 뒤, 같은 해 5월 24일 교수형에 처해진다. 그 와중에도 아이들은 건강하게 태어나고 삶은 흘러갔다.

내 부모님은 독재자의 죽음에 눈물을 흘렸다(고 들은 것 같다). 당시는 유감스럽게도 격동의 시대였다. 김재규는 죽을 날짜를 받았지만 박정희는 돌아올 수 없었다. 그가 집권한 후, 1인당 국민총생산이 87달러에서 1500달러로 성장했다. 새마을운동과 식량증산정책으로 농어촌 근대화를 촉발했던, 고속도로망 건설로 사회간접자본을 확충한, 독재자 박정희가 부활할 수 없어 우셨다. 그 흔한 기념 시계 한 번 받은 적 없는데도. 그리고 김재규의 법정 최후진술은 아무도 귀담아듣지 않았다. ― “나는 오늘 마지막으로 이 나라에 자유민주주의를 회복시켜 놓았다.” 그래, 김재규의 말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장기집권을 위해서 3선 개헌과 국회와 정당 해산, 계엄령을 선포 후 ‘통일주체국민회의’가 대통령을 선출하는 유신체제를 구축한 박정희. 저항은 탄압하고 인권은 무시하며 성장 혜택은 소수독점자본가에게 건넨 박정희. 그리고 말 한마디 나눠본 적 없지만 정치적 위협으로 부상하는 김대중을 수차례 죽이고자 했던 박정희. 그의 죽음은 분명 “자유민주주의의 회복”으로 보였다.

이날부터 ‘망령(亡靈) 박정희’의 배회도 시작됐다. 그는 어쩌면 평범하게 쇠락해야 했다. 1979년 12월 12일 수도경비사령관 전두환(全斗煥, 1931.1.18~언제?)과 육군보병소대장 노태우 등 신군부세력도 (보고 듣고 배운 대로) 쿠데타를 일으켜 실권을 장악한다. 김대중·김영삼·김종필은 갇혔고, 시민과 학생들은 ‘계엄철폐’와 ‘전두환 퇴진’을 외치며 시위를 벌였다. 김재규의 목이 매달린 그 5월, 전라남도 광주에선 수천 명의 시민과 학생이 탱크와 공수부대에 의해 학살당한다. 저 밖의 사람들은 알 수 없었고, 알아도 침묵해야 하는 시대였다.

김재규는 이런 말도 했다. “다만 내가 이 세상을 빨리 하직함으로써 자유민주주의가 이 나라에 만발하는 것을 보지 못하고 가는 그 여한이 한량없습니다.”라고. 그에게 5월의 죽음은 참 다행이었다. 옥중 시에 “내 목숨 하나 바쳐 독재의 아성 무너뜨렸네.”라고 적었지만, 결과적으로 별반 나을 바 없는 정권을 줄줄이 만들어냈다. 그렇게 저렇게 2006년까지 달려왔지만 박정희는 여전히 제마(制魔)되지 못했다. 이명박은 ‘박정희式 경제개발론’을 펼치고, 박근혜는 ‘정체 모를 정통성’을 자랑한다. 박정희는 대체 언제 죽는 것일까.

1972년생 이기호는 「백미러 사나이」에서 박정희 대통령을 ‘이시봉’의 뒤통수에 부활시킨다. 김재규의 저격(狙擊)으로 화가 난 아버지가 집어던진 용궁다방 재떨이에 맞아 뒤통수에 박통의 눈이 생긴 이시봉은 ‘탈역사적인 눈/박정희의 눈’으로 세계를 본다. 그의 친구들은 “세 번씩이나 대통령을 배출한 육사에 들어가기 위해”서 교련시간에 “모조 캘빈 소총을 들고 김일성의 허수아비를 향해” 악다구니를 썼다. 하지만 그는 “박 대통령이 살아생전 대학교라는 곳을, 대학생들을, 얼마나 경원시하고 미워했는가를” 모르고 서울 소재 상위권 대학교에 원서를 낸다. 제 실력으로 쓸 수 있던 한글이라곤 제 이름과 ‘거북선’이 고작이었지만, 박통의 도움(?)으로 이시봉은 대학생이 된다. 하지만 행여 대학합격의 비밀이 밝혀질까 과묵하고 성실하게 학교와 자취방만 오고갔다. 한데, ‘그날’은 버스가 오지 않았다. 그래서 고개를 숙이고 뒷걸음질로 달렸다. 이시봉은 우연히 ‘노태우 정권 타도’를 부르짖는 학생과 전경의 대치 상황에 끼어들게 되고, 전경과 “도망치는 자가 쫓아오는 자의 얼굴을 바라보며 뛰어가는, 추적자의 자존심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릴레이”를 벌인다. 그의 선전은 전경의 방어선을 무너뜨렸고, 시위대 학생들의 박수를 받는다. 그리고 훗날 “자신의 뒤통수에 부활한 박 대통령이 대학생들과의 거짓 화해를 시도한 첫날”이라고 기록한다. 그날 이후 이시봉은 심수봉을 닮은 여자아이를 사랑하게 되고, 박통은 의지와 상관없이 눈을 뜨게 된다. 이시봉은 어떻게 되었을까? 흥미진진하지?


나는 사실 이 역사와 무관하다. 내가 원한 상황이 아니며 자유로울 수도 없지만, 할 수 있는 일이나 하지 않은 일도 없다. 하지만 일련의 역사적 속에서 ‘죄의식’만 비대하게 키워온 세대도 있다. 그들은 ‘고골리(Nikolai Vasil’evich Gogoli)’의 ‘비판적 리얼리즘’과 “붕괴되어가는 낡은 질서와 새로이 대두되고 있는 새 질서 사이의 모순을 분석한다.”는 ‘루카치(Georg Lukacs)’의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통해 192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한국문단을 견고하게 다져왔다. 즉, 한국문단은 리얼리즘을 근심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세계는 눈치 없이 변했고 삐삐와 PC통신이 90년대로 침투했지만, 문단은 80년대를 끊어버릴 준비가 덜 되어있었다. 역사와 사회에는 마땅히 응시해야 할 것이 없었으며, 이데올로기는 붕괴되고 있었다. 별수 없이 ‘나’와 ‘주변’에게 집착에 가까운 구애를 시작한다. 그리고 몇몇 작가群의 상업적 성공은 역사적 죄책감과 부채감의 치유에 희망을 갖기에 충분해 보였다. 하지만 그것은 ‘역사로부터 달아나기’였다. 평론가 이광호는 이를 가리켜 “90년대 문학은 저 80년대로부터 도주하려 하면 할수록 80년대의 거대한 그늘을 직면 했던 것이다”(「혼종적 글쓰기, 혹은 무중력 공간의 탄생」, 『이토록 사소한 정치성』)라고 비장하게 적고 있다. 그리고 90년대 문학의 문제가 “‘개인주의’와 ‘나르시시즘’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그것을 더욱 전위적이고 정치적인 미학으로 제기하지 못한 데서 비롯된다. 그리고 극단적인 개인주의는 그 자체로 급진적이며 정치적인 것”(「문제는 리얼리즘이 아니다」, 같은 책)이라고 지적한다. 정확한 이유가 무엇이건, 90년대의 문학은 위기인 것처럼 비춰졌다. 허나 역사를 짊어진 그들에겐 최선이었다.

이제 2000년대의 작가들은 ‘상상력’을 진화시킨다. 포켓에 고해수첩을 넣어두는 대신 혼성(混成)수첩에 기입한다. 그들은 역사적 죄의식이나 문학의 지위엔 관심이 없다. “그저 외롭고 쓸쓸할 때 본드를 불었”다고 고백하는 「햄릿 포에버」의 ‘이시봉’처럼 소설 쓰기 행위도 계속된다. 한편, 당신들의 ‘체험적 역사’는 더 이상 ‘견고한 특권’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대신, 가상세계 안에서 역사를 ‘인용’한다. ― “본드를 부느냐 마느냐, 이것이 문제로다. 가혹한 운명의 화살을 참는 것이 장한 일이냐, 아니면 환난의 조수를 두 손으로 막아 이를 근절시키는 것이 장한 것이냐?”

이 기획, 이기호의 소설은 확실히 2000년대적 문학의 징후다. 박민규의 국적 없는 상상력은 넘치게 자유롭지만 역사는 올라타지 못했다. 하지만 이기호는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다. 역사에 뿌리를 둔 망령들이 이기호의 소설을 영매로 살아난다. 이는 이야기꾼의 보잘것없는 진짜 지위를 복권(復權)하는 행위인 것이다.

나는 아주 오랫동안 투정을 부렸다. “더 이상 단전에 힘을 모아 외쳐야 할 것은 없다!” “이곳엔 80년대 이전에 대항할 역사는 더 이상 생산되지 않는다.”라고. 하지만 이기호의 질문은 달랐다. ‘체험적 역사’와 ‘망령의 역사’의 틈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묻는다. 물론 2000년대적 문학은 이제야 시작된 것이므로 대답은 이르다. 하지만 우선, 90년대를 억압했던 것들을 ‘상상력’으로 조롱하고 허물어버리는, 돌파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문제는 내게 상상력이 없다는 것. ― “이는 곧 아멘아멘이더라”(「최순덕 성령충만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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