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 Light

당신에겐 희망이 안 보여요

주제 사라마구, 『눈먼 자들의 도시』, 해냄, 2003.(‘알라딘’에서 정보보기)



어느 설문 조사에 따르면(왜 이런 조사를 하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갖고 싶은 초능력> 1위는 단연 ‘투명 인간’이다. 그리고 그 초능력을 어디에 쓰고 싶냐는 물음에는 온갖 금단 영역이 망라되어 있었다. 애써 얻은 초능력을 기껏 그런 일에 쓴다는 게 한심하지만, 돌이켜보면 이해 못 할 일도 아니다. 나도 소싯적엔 투명 인간이 되어 여자 목욕탕을 엿보고 싶었다. 지금에 와서는 영화관에 몰래 들어가는 게 천 배는 더 쓸모 있다. 그럼에도 그 시절을 굳이 변호하자면, 호기심이란 비극이나 죽음, 그 어떤 처벌로도 막아내기 어려운 감정이다. 황금시대부터 철의 시대에 이르기까지 방대한 예시를 들 수도 있다. 게다가 투명 인간에 대한 지향은 호기심이라는 양가적인 감정에 그치지 않고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자 하는 개인의 열망일지 모른다. 이러한 소망이 현실로 이루어진다면 우리는 ‘인간성’이라는 이상에 따른 기대로부터 더 이상 억압당하지 않고 자유로워질 것이다. 그래, 무슨 상관일까. 나는 타인에게 얼굴도 이름도 없는데. 그래서 지구상의 많은 인류가 투명 인간의 꿈을 소설이나 영화로 옮겼다. 그런데 주제 사라마구는 훨씬 더 악한 생각을 품었다. 내가 투명해지는 대신, 사람들의 시각·시선을 모두 빼앗는 것이다. 그래, 순진한 놈은 꼭 손해를 본다.


부조리(不條理). 장-폴 사르트르는 「<이방인>의 해설」에서 부조리에 관해 인간과 세계 사이에 극복할 수 없는 이원성 및 분리를 지적한다. “영원을 갈구하는 인간의 충동과 그의 존재가 가진 한정된 성격 사이의 분리, 인간의 본질인 ‘근심’과 그의 노력이 보여주는 허영 사이의 분리”(『이방인-알베르 까뮈 전집 2』, 책세상, 165쪽)는 여전히 ‘부조리’를 규명하는 데 있어서 가장 유효한 주석이다.

갑작스럽게 시력을 빼앗긴 사람, 이 ‘제한된 개인’은 두 눈을 멀쩡히 뜬 채로, 소유물에 대한 권리를 포함한 모든 자격을 잃어버린다. 자기 양말 한짝을 통일성 있게 신을 권리나 V넥을 강조한 와인색 유러피언 원피스를 입고 감탄사를 내뱉을 수 있는 권리만이 아니라, 사회규범의 테두리 안에서 ‘인간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는 당연한 권리조차 그들은 잃어버린다. 그뿐만 아니라 ‘타자의 시선’이 부재한 상황 속에서 이 ‘제한된 개인’은 그 어떤 동물보다도 폭력적이고 이기적인 존재로 돌변한다. 수 억 년에 걸친 진화가 불과 며칠 만에 개똥이 된다! 이런 재앙 속에서 “영원을 갈구하는 인간의 충동” 혹은 “인간의 본질인 근심”이라는 것이 과연 존재할 수 있는 것일까. 조리(條理)에 맞는 삶이 과연 가능할 것인가.

저자는 ‘예’라고 말한다. 비록 지금의 현실은 구름이 잔뜩 낀 하늘로 인해 신(神)도 굽어볼 수 없는 상황이지만, 그 모든 신성한 것―십자가에 못이 박힌 남자조차 하얀 붕대로 눈을 가리고 있는 상황이지만, ‘조직’이나 다른 무엇을 통해 ‘실존’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안과의사의 아내처럼 ‘눈을 떠야 하는 형벌’을 겸허하게 받아들인다면. 아무도 영원을 갈구하지 않는 세계에서 주저앉아 울거나 모든 ‘짐승들’을 연민할 수 있다면. ‘최후의 인간’이 되더라도, 최소한의 인간적인 것을 공동체에 베푼다면. 그래서 “팔은 여섯 개이지만 눈이 두 개인 하나의 사람”이 될지라도, 우린 언젠가 눈을 뜰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사람들은 다시 눈을 뜬다. 하지만 인간성의 밑바닥을 어쩔 수 없이 지켜봐야 했던, 신이 볼 수 없는 땅을 지켜봐야 했던 대리인 ‘안과의사의 아내’는, 결국 눈이 먼다. 혹은 더 이상 보기를 거부한다. 이것이 ‘안과의사의 아내’가 인간으로서 실존을 증명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그녀는, 우리 참된 인간성은, 과연 언제 눈을 뜰 것인가. 혹시 우리가 여전히 답을 구하지 못한 유일한 이유가 애초에 질문이 틀렸기 때문은 아닐까. 당연하게 믿어온 ‘인간성’이(라고 부를만한 것이) 각기 몇 개씩만이라도 우리에게 주어져 있을까?

그리고 대답은 스스로 구해야 한다. 그래서 스스로를 구해야 한다.



“오직 신만이 우리를 볼 거예요. 첫 번째로 눈이 먼 남자의 아내가 말했다. 그녀는 이때까지 실망과 좌절을 겪었으면서도 신은 눈이 멀지 않았다는 믿음을 고수했다. 그 말에 의사의 아내는 대답한다. 신도 못 볼 거예요, 하늘에 구름이 잔뜩 끼었거든요, 오직 나만 볼 수 있죠.” (394쪽)

“십자가에 못이 박힌 남자는 하얀 붕대로 눈을 가리고 있었다. 그의 옆에는 여자가 있었는데, 그녀는 심장에 일곱 개의 칼이 꽂혀 있었고, 눈에는 역시 하얀 붕대가 덮여 있었다. 그런 식으로 눈을 가린 것은 두 사람만이 아니었다. 성당에 있는 모든 성상들이 다 눈을 가리고 있었다. 조각의 눈에는 하얀 천을 묶어놓았고, 그림의 눈에는 하얀 물감으로 두텁게 붓질을 해놓았다. 어떤 여자는 딸에게 읽기를 가르치고 있었는데, 둘 다 눈을 가리고 있었다. 어떤 남자는 책을 펼치고 있고, 그 위에 어린아이가 앉아 있었는데, 둘 다 눈을 가리고 있었다. 또 한 남자의 몸에는 많은 화살이 박혀 있었는데, 그도 눈을 가리고 있었다. 불이 켜진 등을 들고 있는 여자도 눈을 가리고 있었다. (…) 눈을 가리지 않은 여자가 딱 하나 있었는데, 그녀는 자신의 파낸 두 눈알을 은쟁반에 받쳐 들고 있었다.” (446∼447쪽)

“궁극적으로 신은 볼 자격이 없다” (44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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