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 Light

진보라

며칠 전 KBS 『인간극장』 – 「그녀를 보라」 편(2월 27일~3월 3일)을 흥미롭게 봤다.

주인공 진보라는 18살 재즈 피아니스트다. 6살 때 비틀즈 음악을 처음 듣고 음계로 따라 부르는 음악적 재능을 보였다(고 한다). 14살이 되어서는 ‘엘튼 존’의 앨범 프로듀서로부터 엘튼 존과 동일한 대우로 음반 제의도 받았다. 중학교 2학년에 자퇴했고, 지난해 버클리 음대 장학생으로 선발돼 오는 9월 입학을 앞두고 있다. 현재는 뮤지컬 음악의 편곡을 맡고 있으며 뮤지컬 배우와 모델 활동도 겸하고 있다. 그럼에도 하루 5시간의 연습을 거르지 않는다.

진보라는 모든 소리를 피아노로 표현할 수 있다. 그 일이 어느 정도로 어려운 일인가,에 관해서는 알지 못한다. 장금이의 절대 미각과 필적할 만한 절대 음감을 가졌다고 막연히 생각할 뿐이다. 그래서 ‘천재 재즈 피아니스트 진보라’라는 수사를 재생산하는 것이 더 조심스럽다. ‘천재’라는 낱말은 성장하는 주체를 지우고 노력을 절하한다. 비범함을 상업적으로 이상화하여 개인을 고립시키는 일도 빈번하다.

그렇다 해도 내가 걱정할 일은 아니지. 6살의 내가 J. D. 샐린저의 문체로 방황하는 미취학 아동의 이야기를 쓴 게 아니라면. 이런 이야기로 빼곡한 공책이 한 권쯤 정말 있었더라면.

이은주

지난 2월 22일은 故이은주 배우의 1주기였다.

지금까지 나는 영화 《주홍글씨》(2004)를 보지 않았지만, 어디에선가 “이은주는 한석규가 죽였다”라며 울먹이는 사람을 봤다. 감독이나 작가를 지목하지 않고 주연 배우에게 책임을 넘겨씌운다는 게 납득이 가지 않는다. 나도 영화를 보면 한석규를 비난하게 될까. 확인하고 싶다.

그럼에도 관람을 회피해 온 이유는 OST 〈Only when i sleep〉 때문이다. 故이은주가 남긴 노래에 영화의 잔여물이 들러붙어도 좋을지 판단이 서지 않는다. 그가 부른 이 노래를 그만큼이나 좋아한다. ― But it’s only when I sleep, I see you in my dreams.

정한아

대산대학문학상 소설 부문은 정한아(건국대 국어국문학과 4)가 수상했다. 단편소설 「나를 위해 웃다」는 천명관의 장편소설 『고래』에 빚을 지고 있다. 심사위원도 이 부분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화자가 수정란이라는 점, 그리고 ‘엄마’의 줄기찬 키 자라기라는 설정이 자칫 흡사한 기존 작품을 떠올리게 하여 망설임이 전혀 없지는 않았지만, 작품 자체의 흠은 아니며, 다른 작품과의 변별성도 확실히 담보되어 결코 작품성이 훼손되지 않는다는 판단” 아래 당선작으로 선정했음을 밝히고 있다.

은희경은 문학동네신인상 수상자 천명관에 대해 “이 작가는 전통적 소설 학습이나 동시대의 소설 작품에 빚진 게 별로 없는 듯하다”라며 힘을 실어준 적이 있다. 올해 대산대학문학상의 심사위원 명단에도 은희경이 있다. 심사평을 다시 살펴 보면, “수 정란인 화자로 하여금 엄마의 불우하지만 지칠 줄 모르는 상징적 성장 과정을 응시하게 하면서 대학생의 의식치고는 만만치 않은 삶의 긍정을 소화해 낸 점이 많은 점수를 받았다”고 평가한다. 그러나 천명관의 새로움을 도려낸 정한아의 작품은 아쉽기도 하다. 긍정적으로 바라본다면 ‘어떻게 말하느냐’에만 관심 쏟던 천명관을 끊어내고 ‘무엇을 말하느냐’에 무게를 실었다고도 할 수 있겠다. 동시에, 다소 억지스럽고 어중간한 교훈적 이야기가 탄생하고 말았다. 이는 임철우가 가리켰던 『고래』의 장점, 즉 “신화적, 설화적 세계”에서 멀어진 탓으로 보인다. 게다가 작품 말미에서 엄마가 공간을 뚫고(꿈) ‘죽은 외할머니와 노파의 영혼’을 만난 뒤에 갑작스럽게 ‘성장의 긍정’ 및 ‘내면으로의 성장 전이(轉移)’가 이루어지는 것은 영 개운치 못하다.

그럼에도 정한아는 확실히 안정적인 글을 쓴다. 이 덕목은 많은 습작자가 소원하는 것이다. 나도 약간 시샘하고 있다. 그는 좋은 작가가 될 것이다. (메모로 남긴 감상을 한동안 잊고 지내다가 언제 다시 이을지 몰라서 일부를 옮긴다. 이 빈약한 감상을 그가 우연히라도 확인하는 일이 없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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