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 Light

근대와 현대, 사유와 서사의 무너진 균형

김영하,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 문학과지성사, 1999.(‘알라딘’에서 정보보기)



주변 사람들은 알 것이다. 내가 김영하의 소설뿐만 아니라 작가 김영하도 시기한다는 걸. 그 반감의 이유를 백지연1 평론가는 이렇게 말한다. 앞뒤 자르고 인용해 보자. ― “이미지 중심의 서사에 거부감을 느끼는 보수적인 독자들조차도 김영하의 소설이 잘 짜여진 이야기 구조를 지녔다는 점에는 일단 동의한다.”(266쪽) — 그렇다. 나는 “이미지 중심의 서사에 거부감을 느끼는 보수적인 독자”다. 그리고 내가 지향하는 픽션(fiction)은 이미지가 아니라 사유다. 지금 조명 받는 이미지적 허구의 구조물에 발 들이면 시각적 선명함과 서사적 재미에 눈 돌릴 새 없지만 나는 소설의 극대화된 오락성이 거북하다. 소설이 재미를 두고 다른 미디어와 경쟁하지 않길 바란다. 원초적인 재미로 인한 팽창은 사유와 성찰을 외곽으로 내몰 것이다. 그런 까닭으로 그 탄탄한 길 위에 있는 박민규나 천명관의 작품도 지지하지 못한다.

작가는 각자 한 벌의 카드를 들고 테이블에 앉는다. 그리고 카드를 한 장씩 뒤집는다. 카드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여전히 전통적인 결핍과 불안을 안고 있으며 이를 소급(遡及)하며 현재를 살아간다. 그것은 아주 낡은 카드지만 그 상징과 풀이 방식에서 조금씩 차이가 있다. 독자는 김영하가 보여주는 알록달록 선명한 카드를 좋아한다. 단 한 작품일지라도, 테이블에 마주 앉아 김영하의 손끝에서 뒤집어지는 카드를 유심히 들여다본 사람은 안다. 이전에는 서사가 한 덩어리로 구술되었다면 그는 서사를 잘게 쪼개 눈앞에 보여준다. 이를 두고 누군가는 한국 문학의 확장이라고 부르겠지만 문자의 사유는 축소되고 주변화되었다. 그가 등단한 1996년 이후, 예외는 없다.

내가 믿는 소설에서 ‘이야기’는 서사예술의 시녀(侍女)다. 하지만 그의 소설에서 이야기는 왕녀다. 문자는 더 이상 사유하지 않는다. 시간과 사건과 이미지에 헌신한다. 나는 경영학도 김영하의 경제적인 문장을 좋아할 수 없다. 또한, 애꿎게도 “화성군에 본부가 있는 모 향토사단 헌병대 수사과”에서 군 생활을 한 탓에, 기성과 단절된 그의 작법에 대해 편견이 쌓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헌병대 수사과가 나 같은 예비 작가에게는 훨씬 잘 맞았다”는 고백이 아니더라도, 그의 문장이 가진 효율성은 그의 삶이 투영된 것임이 분명하다. 내 삶은 사건의 서술보다 자기반성이 주요하다. 그래서인지 김영하는 나보다 미니홈피 운영을 더 잘한다. 인정한다.

그 외에 김영하의 장점은 잘 다듬어진 플롯에 있다. 평론가 백지연은 김영하의 플롯이 “일상으로 시작하여 일상으로 돌아오는 정확한 회귀의 구조”(274쪽)를 취한다고 분석한다. 회귀의 구조와 진행은 서사의 시작부터 애용되어 특별할 게 없지만, 김영하는 플롯 자체를 댄디즘(dandyism)이나 키치(Kitsch)와 같은 현대적 코드를 담아내는 그릇으로 적절히 활용한다. 그가 “아웃사이더 장르의 문학작품들”에서 모사한 건 그것의 지정학적 위치다. 이처럼 흠잡을 데 없는 전략은 좀 배우자.



  1. 백지연(白智延) 평론가. 1970년 서울 출생. 경희대 대학원 국문과 박사 과정 수료. 1996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평론부문에 「아담의 글쓰기, 환유적 욕망의 변주」로 등단. 평론집 『미로 속을 질주하는 문학』이 있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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