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 Light

어떻게 죽여줄까?

오로라 공주(Princess Aurora, 2005)(‘알라딘’에서 정보보기)

방은진 감독, 엄정화(정순정)·문성근(형사 오성호)·권오중·최종원·현영 출연.



방은진 감독을 본 적이 있다. 그는 종로의 카페 뎀셀브즈에서 한 청년과 대화 중이었다. 나는 애초부터 사람 얼굴을 잘 구분하지 못하니까 믿기 어려울 수도 있다. 하지만 최초 발견자는 J씨다. 그가 “저기 방은진 아냐?”라고 귀띔하지 않았다면 나는 결코 몰랐을 거다. 방은진의 첫인상은 “무섭다”와 “1965년생이 왜 멋있어?”였다. 청년은 영화 관계자 같았는데, 여기엔 어떤 근거도 없다. 감독과 청년이 마주하고 있는 상황에 대한 내 편향된 느낌일 따름이다. 이 느낌에 공감을 얻고 싶지만 비신사적으로 몰래 찍은 사진은 없다.

영화 《오로라 공주》는 “잔혹하게 슬픈 연쇄살인극”과 “이유 있는 연쇄살인”이라는 카피를 사용한다. 이 작품은 여섯 살짜리 소녀가 성폭행을 당한 뒤 살해된 사건에서 출발한다. 그리고 1년 뒤, 이 사건과 관계를 맺은 사람 다섯 명이 죽는다. 우리는 살인을 저지른 소녀의 어머니에게 감히 죄를 물을 수 없다. 그 시작은 알 수 없지만 ‘모성애’에는 초월적 여성의 이미지가 깃들어 있다. 아이를 잃은 슬픔과 원한으로 죽어서도 떠돌던 여성들이 거짓으로 생명을 부지하면서 복수를 기획한다는 사실은 고무적이다. 관객의 완전한 동정과 지지는 여성이 표출할 수 있는 극단적 분노의 장치로 ‘아이 상실’이 여전히 유효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리고 ‘왜 죽어야만 하는가’를 넘어서서 ‘어떻게 죽는가’로 관심이 옮겨간다. 이 질문의 이동이 서사를 역동적으로 만든다.
사람들은 항상 ‘죽음의 형식’에 관심을 갖는다. 죽음은 인류와 함께했지만 매번 다양한 형식으로 창작의 모티브가 되어 왔다. 죽임의 형식이 하나의 장르고 잘 죽이는 영화가 잘 만들어진 영화다. 수많은 공포·스릴러 영화는 냉동 생선, 핸드폰, 구두, 첼로 등 새로운 살해 도구와 방법을 모색한다. 일상 속 가장 가까운 사물이 어떤 방식으로 끔찍한 흉기로 돌변하는가 혹은 살해에 유용하게 쓰이는가. 그리고 살해 동기와 닿아있는 윤리학적 문제는 사람들의 안정적인 일상에 균열을 만든다. 남성이 여성에 대한 성적 대상화로 인해 파멸하듯 도덕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걷는 이는 반드시 비참한 죽음을 맞는다.
영화 《오로라 공주》의 살해 방법 가운데 ‘석고팩’은 인상적이다. 모든 경계(警戒)를 해제하고 시술대에 누워있는 시간, 모든 구멍으로 흘러 들어와 몸속을 가득 채우는 석고의 공포는 말로 할 수 없다. 하지만 정순정(엄정화)이 어째서 번거로운 살해 과정을 감수해야 하는가는 납득하기 어렵다. ‘복수는 화해’라는 명제 위에서 ‘용서의 시간’은 필수 요소지만 과정의 창의적 치밀함과는 별개다. 그녀가 과정으로 인해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오히려 ‘계획 살인’은 가장 중요한 정신 감정에 나쁜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이러한 설계에 있어 가장 독보적인 감독은 박찬욱이다. 영화 《올드보이》에서 CD를 꺾어서 단숨에 목을 베고, 영화 《쓰리, 몬스터》에선 피아노 줄에 여성을 매달아 도끼로 손가락을 하나씩 잘라낸다. 가혹한 린치 후에 까다로운 총으로 머리를 쏘는 영화 《친절한 금자씨》까지. 이 일련의 과정은 가해자의 이득이 뚜렷하다. 즉, 영화에서의 복수는 단순히 ‘생명회수(生命回收)’를 의미하는 데 그치지 않고, 관객에게 다른 질문을 해야 한다.
죽음의 방식은 삶의 방식에 기대어 있다. 이웃집 아흔 살 할머니의 복상사(腹上死)는 얼마나 우스꽝스러운가. 거짓 죽음을 연출하다가 현실이 된 죽음은 얼마나 허무한가. 낯선 죽음과 타당한 죽음 사이를 조율하는 일은 작품을 보다 좋은 것으로 만드는 데 일조한다. 그리고 관객에게 죽음과 삶의 거리를 좁혀 보여주는 일 또한 흥행에로의 일 보 전진이다. 부디 내 페이소스(Pathos)를 자극해 달라. 관객에게 영화관 안에서 큰 소리를 내거나 머리가 크다는 심플한 이유로도 음료 빨대에 의해 경동맥이 뚫릴 수 있다는 사실을 가르쳐주시라.


덧붙임. 문성근(오성호)의 연기는 변함이 없다. 인상적인 점은 ‘목사가 되고 싶어 하는 형사’라는 역할 그 자체다. 그의 아버지는 故 문익환 목사가 아닌가. 극 중 “죄인을 인도하는 일”에 대해 동경을 내비치던 문성근에겐 씁쓸한 뒷맛이 남는다. 열린우리당에 입당한 문성근이 이제 다시 돌아가기 어렵다는 것, 그것을 영화는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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