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도·강간범
거울을 들여다보고 있다.
광대뼈가 살짝 돌출되어 각이 선명한 얼굴 윤곽. 앞 머리카락이 눈썹까지 내려온 상고형 머리. 약간 까무잡잡한 피부색. 쌍꺼풀 없이 작은 눈. 좁은 미간. 적당히 진한 눈썹. 수염 자국. 보통 체형. 이토록 평범한 것도 특징이라면 특징이 될 수 있을까.
된다. 될 수 있다. 내 얼굴은 바로 옆 동네인 마포 경찰서에서 배포한 강도·강간범의 인상착의와 똑같다. 관상에 드러난 성격과 기질로 미래가 결정된다는 게 사실이라면 지금부터라도 인상을 바꾸기 위한 노력이 필요한 시점일지 모르겠다. 솔직히 이 정도 닮은꼴이면 누군가 신고를 해서 경찰서에 끌려가더라도 항의할 명분이 없다. 알리바이가 없다는 건 더 심각하다. 판사님, 집을 사랑한 죄가 이렇게나 큰 것입니까?
이제라도 폴 오스터의 소설 「오기렌의 크리스마스 이야기」에 등장하는 인물처럼 매시간 사진이라도 찍어야겠다. 소비는 카드로 하고 영수증을 꼭 챙기자. 길을 걷다가 CCTV가 보이면 브이를 하는 것도 좋겠다. 촘촘한 기록만 나를 무죄방면 시킬 수 있다. 그리고 범인이 잡힐 때까지 외출을 자제해야지. 신고 포상금 5백만 원에 눈멀어 경찰에 제보할 사람은 없겠지. 내가 누를 끼친 일은 미납한 의료보험료뿐이다.
한 장의 수배 전단으로 인해 평범함이 가장 위험하다는 걸 깨달았다. 어쩌면 이 얼굴은 나 혼자만의 것이 아니다. 세상에 얼마나 흩어져 있는지 모를, 닮은꼴 사람들의 동의 없이 범죄를 저질러서는 안 된다. 다 함께 착하게 살자.
직면 과제
내 가장 큰 문제는 ‘지루하지 않다’는 것이다.
덴마크의 신학자 ‘쇠렌 오뷔에 키에르케고르(Søren Aabye Kierkegaard)’는 지루함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니 이런 말도 남겼겠지. ― “신들은 지루했기 때문에 사람을 창조해 냈다. 아담은 혼자였기 때문에 지루했다. 그래서 이브가 만들어지게 되었다. 그 순간부터 이 세상은 지루함이 생겨났고 사람들의 무리가 커지는 만큼 지루함의 크기도 따라 커졌다”
신들조차 견딜 수 없었던 지루함이 왜 내겐 결핍된 있는걸까. 창조(창작)의 바탕은 지루함이다. 어떻게 하면 나도 하루가 견딜 수 없이 지루해질까. 컴퓨터를 끄고, 윈도우즈 대신 창밖을 내다보면 지루함이 길 가는 모든 사람에게 나눠주어도 남을 만큼 곳간에 쌓이겠지. 우선 홈페이지를 닫아볼까? (ㄱㅅㅊ씨를 시인으로 만든 게 ‘알아서 척척 소사 체조군’이라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