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의 의미
모르는 사이, 귀갓길에 꽃이 생글생글 피었다. 휘파람이 스타카토(Staccato)로 새어 나온다. 참고로 겨울에는 비브라토(Vibrato)다. 이렇게 따뜻한 날에는 길가에 핀 들꽃을 꺾어 귀여운 소녀에게 내밀고 싶다. 청초함이 꽃말인 프리지어 다발도 좋겠다. 숨만 들이쉬어도 속이 울렁거리는 봄이니까 소녀들은 못난 고백에 시달릴 거다. 그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어서 오늘도 내일도 참는다. 사실 내 진짜 봄의 기쁨은 로맨틱으로부터 100만 광년쯤 떨어져 있다. 나는 “이제 드디어 난방비가 들지 않겠구나.”라고 생각하며 미소 짓는다. 이달에 납입해야 할 도시가스 요금은 41,670원이다. 생각하니 휘파람 쏙 들어가네.
만년필
평소 나불나불 자랑했지만 누구도 부러워하지 않았던 라미(LAMY) 사파리 만년필이 증발했다(관련글). 찾아야 한다는 목적이 이성의 눈을 가려버려서 냉장고 안까지 살펴봤다. 장롱 밑에선 먼지를 뒤집어쓴 부적 한 장이 튀어나왔다. 올 초에 어머니께 받아두었다가 잃어버린 부적이다. 용하다는 동자보살의 영기가 만년필을 이용해서 날 부른 것 같기도 하다. 몸에 부적도 지녔건만 만년필은 나오지 않았다. 펄쩍 뛰고 미칠 노릇이다. 서랍에 넣어둔 기억은 명징한데 만년필도 범인도 목격자도 없다. “모든 사람은 거짓말을 한다.”는 닥터 하우스님의 말씀을 가슴에 새기면서 범죄 가능성을 끊임없이 타진(打盡)하고 있다. 그 여파로 메모와 책 읽기에 대한 의욕이 달아나 버렸다. 그래서 투자자를 찾기로 했다. 주문 페이지는 따로 걸어두겠다. 착한 사람이 아니면 절대 안 보일 것이다. 이번엔 검은색으로 갖고 싶다.
식목일
어제가 식목일이었구나. 공휴일이 아닌 탓에 나무를 심지 못했다는 투덜거림을 산림청은 한마디로 잠재웠다. “8년 만에 처음으로 산불이 없는 식목일이었습니다.” 고등어만 한 나무 한 그루 심고 몰래 삼겹살 굽다가 산을 홀랑 태워 먹을 사람들은 이대로 사무실에 틀어박혀 이면지를 재활용하는 것이 녹자원 발전에 이바지하는 길이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오늘, 고향 밭에 은행나무 2000그루를 심었다. 삽질과 곡괭이질, 쇠스랑질과 호미질을 마구 넘나드는 하드워크였다. 그사이 어깨 결림과 허리 통증에 시달렸고 급기야 두통과 구토가 찾아왔다. 일을 마친 뒤에도 열여덟 시간을 통증과 싸웠다. 영원 같은 고통이었지만 눈을 뜨니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더라. 잠든 건 결코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