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 Light

만인에 대한 수컷의 투쟁

싸움의 기술(The Art of Fighting, 2006)

신한솔 감독, 백윤식(오판수)·재희(송병태)·김용수(병호)·최여진(영애)·박원상(안계장) 출연



소년이 남자로 성장하기까지 배워야 할 게 많다

학교 교실에서 책상 한 칸을 임대해 겸손하게 앉아 시간을 보낸다고 당연히 ‘1/학급학생수’이 되는 게 아니다. 최악의 경우에는 ‘1:학급학생수’, ‘1:전교생수’이 되어버리기도 한다. 토머스 홉스(Thomas Hobbes)가 이야기한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 소년의 현실이다. 힘의 우열이 결정되어 있는 생태계에서 인간이라는 이유로 상큼한 평화를 기대한다는 건 어리석은 낙관이다. 실존적인 자연권을 지배자에게 양도함으로써 원활하게 ‘꺄르르 상태’가 가능하다는 17세기의 사회계약설(theory of social contract)은 학교 내에서 아직 유효하다.

‘쌈짱’이라는 존재는 국가에 흔히 비유되는 바다 괴물 ‘리바이어던(Leviathan)’의 강력한 구속력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 이 저학력(低學‘力’)의 괴물은 심연에서 자신을 지키기보다 광장 복판에서 타인을 물어뜯어 굴욕을 수집하는 걸 즐긴다. 이건 모두 다 윤리 교과 과정의 축소 탓이다.

영화 <싸움의 기술>은 ‘절대왕정’의 변형인 ‘절대짱정’에서 고통받는 소년 송병태(재희)의 투쟁 기록이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점은 정교분리의 원칙과 닮은 쌈짱·꼰대짱·공부짱 분리의 원칙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폭력에 대항하는 방법으로써 영향력 있는 아버지를 뽑지 못하고 최소한의 학습 여건을 갖추지 못해 보복성 공부에 매진할 수 없는 소년은 대체 어떤 대책을 마련해야 할까. 결국 남는 것은 싸움의 기술이다. 먼저 사냥하는 것만이 살길이다. 이 과정에서 경계해야 할 것은 ‘두려움’이다. 싸움의 실전에서 드러나는 차이는 단 세 가지다. 항상 두려운 소년이거나 맞는 두려움만 극복한 소년이거나 때리는 두려움까지 극복한 소년.



1997년 가을쯤이었다. 내 친구 C씨는 타지역 학교에서 원정을 온 X씨가 내리친 커다란 장독에 머리를 맞고 기절했다. 장독 파편은 두 사람을 에워쌌던 아이들만큼이나 산산이 흩어졌다. X씨는 “앞으로 혜진(가명)이 주변에 얼쩡거리지 마라.”라고 타이르듯 말했다. 치정이었다. C씨는 외상 하나 없이 깨어났지만 학교생활은 불편해졌다. 피해자의 사랑은 어쩐지 측은한 구석이 있다. X를 비롯한 모두가 감각적으로 아는 사실이다. 여기에 더해 상습적인 가해자는 알고 있다. 사람은 쉽게 죽지 않는다는 사실을. 반대로 늘 맞기만 했던 아이는 폭력 앞에서 두려움에 정신과 온몸이 봉인 당해 발기조차 어렵다.

우리는 전력으로 두려움을 떨쳐내야 한다. 그것이 새로운 폭력 주체의 탄생을 의미하진 않는다. “강해지고 싶다”는 송병태(재희)의 말에 고수 오판수(백윤식)가 건넨 조언 대로, “집에 돈 좀 있어? 없어? 그럼 맞고 다녀.”가 정답에 가깝다…가 아니라, ‘보복 폭행’과 ‘쓸만한 해결책’의 관계는 남극점과 북극점만큼이나 거리가 멀다. 그럼에도 두 극점을 가로지르는 길 위를 위태롭게 걷고 있는 소년에게 오판수씨는 한마디 말을 남겼다.

“선을 넘을 수 있겠냐? 한 번만 더 손대면 그땐, 피똥 싼다아?”

보복을 기획하는 소년은 토머스 홉스의 “격렬한 분쟁 없이 평화가 달성될 수만 있다면 그것이 가장 좋은 일”이라는 구절을 책상 앞에 붙여두자. 그리고 두려움에 맞서 살아보는 거다.



. 대한민국 영화의 타이틀 시퀀스가 몰라보게 발전하고 있다. 텔레비전 시리즈도 자극 좀 받아서 분발해 달라. 어쩜 그렇게 센스 없고 촌스러우신지. 그런데 최여진(영애)은 도대체 왜? 다방 레지(register) 역으로 잼의 윤현숙도 나온다. 모르고 보면 알아차리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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