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 Light

울었지만 진 건 아냐

최은영, 『쇼코의 미소』, 문학동네, 2016.


이 책 한 권을 읽는데 석 달이 걸렸다(2016년 11월 4일 구매). 요즘에는 책을 잘 안 읽는데, K의 물음에 궁금증이 일었다. K가 한 물음의 요지는 ‘그의 소설이 작가·언론·독자가 이렇게까지 한목소리로 열광할 만한 작품인가?’ 하는 것이었다. 나는 가벼운 호기심에 그 즉시 전자책으로 구매해 읽기 시작했다.

표제작 「쇼코의 미소」를 다 읽고 든 감상은 타자에 대한 ‘강박적 이해심’(내가 달성할 수 없는 재능에 대한 질투가 가미된 표현이다)이었다. 내 엉성한 기준으로 살필 때 이 소설은 그리 마음에 드는 작품이 아니었다. 제법 긴 소설인데 쇼코와 나, 엄마와 나, 엄마와 할아버지, 할아버지와 나, 할아버지와 쇼코의 화해를 위해서 억지스럽게 밀어붙인 흔적들이 보였다. 어쩐지 익숙한 ‘우산’ 에피소드, 서사로 해결하지 못한 감정을 단숨에 정리하는 편지, 갈등 행동에 필연성을 부여하는 등장인물 간의 교차 설명 등, 아무리 뜯어봐도 이 작품은 감정이 과잉된 작품이었다. 물론, 열심히 힘을 내어 끝까지 읽으면 코끝이 찡해졌다. 하지만 감동의 부피가 작품에 어떤 지위를 부여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 때문에 김영채 평론가도 많은 고심을 한 것처럼 보인다. “심사위원들을 감동시켰으니 이 작품이 좋은 작품인가”라고 스스로 질문을 하고, “감동적이라거나 마음을 움직이게 했다는 말은 좀 특별한 지위를 지니”며 “감동받음이란 모든 예술이 지향하는 종국적인 것”이라고 결론을 지음으로 대답을 슬쩍 피한다. 작품이 감동적이라는 말은 “어떤 작품에 대한 상찬의 말 중에서도 최상급의 것”이라고도 말하지만 그 감동이 무엇으로부터 유래한 것인지는 끝내 이야기하지 않는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나도 이 작품집을 읽으면서 어떤 감정이 고양되는 걸 느꼈다. 하지만 그 감동이라는 것은 인물의 아프지만 솔직한 ‘목소리’에서 발생한다. 내 어머니는 텔레비전을 보시다가 종종 눈물을 흘리신다. 검버섯이 온몸을 뒤덮은 노인이 수십 년 전에 돌아가신 어머니를 생각하며 죄스러워한다든가, 부모 생전에 불효만 하던 자식이 뒤늦게 오열을 한다든가 하는 장면에서는 어김없다. 이런 직접 구술의 힘을 최은영은 정말 잘 쓴다. 이것만으로는 순하고 맑은 작품에 머무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차기작은 반드시 읽어볼 생각이다. 이 작품집은 작은 정거장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든다.


덧붙임. 얼마 전 작품집 『쇼코의 미소』는 소설가 50명이 추천한 ‘올해 가장 기억에 남는 소설’ 중 하나로 뽑혔다고 한다. 50명 가운데 7명이 추천하여 다른 작품들과 함께 공동 1위라는데, (개인적으로) 추천한 이가 누구인지 궁금하다. 그리고 며칠 전에는 최은영 작가가 ‘제8회 허균문학작가상’ 수상자로 선정되었다고 한다(심사위원:윤후명·이순원). 이렇게 많은 이들이 주목하는 걸 보면 내 감상이 후진 것 같기도 하고. 솔직히 좀 그렇다.

덧붙임. 『Axt』 39호 커버에 최은영 작가의 근사한 사진이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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