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이란 이런 곳인가?

오늘도 특별한 날이 아니다. 어제나 엊그제와 같이 지겹다.

지난주에는 단상 앞에서 “지옥이란 이런 곳인가?”라고 혼자 물었다. 한 공간에 모여 있던 서른 사람 중 몇이 웃었다. 가벼운 농담이었던 것처럼 힘주어 한 번 더 말했고 몇 사람이 더 웃었다. 나도 웃었다.

방금까지 오늘도 특별한 날이 아니라고 확신했는데, 어쩌면 매일매일 특별한 날을 맞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내일은 더 집요하게 옭아매는 지옥’이라는 상시 이벤트가 실수 한번 없이 이어지고 있다. (정말로) 내가 벌여놓은 건 하나도 없는데 일의 번식 속도를 도저히 따라잡을 수가 없다.

열두시간 째 일을 하다가 어머니의 전화를 받았다. 요즘도 바쁜지 물으시길래 그냥 그렇다고 얼버무렸다. 전화기를 넘겨받은 아버지는 요 며칠 감기로 고생 중이라고, 이제 김장을 해야 한다고 엄살을 부렸다. 전화를 끊기 전에 아버지도 어머니의 당부를 그대로 읊조렸다. 밥 잘 먹고 따뜻하게 옷 입고 다니라는 등의. 어머니와 아버지는 매초 이런 걱정을 채우고 사는 게 어렵지 않은 걸까.

나사못 교수척장분지형

구두 뒷굽이 떨어졌다. 구둣방에서 본드를 붙여줬다. 다음날 다시 떨어졌다. 구둣방에서 나사못을 박아줬다. 세 개나 박아서 짱짱하기는 한데… 바닥을 디딜 때마다 나사못 머리 찧는 소리가 들렸다. 시멘트 블록에 쓸리기라도 하면 나사못에 교수척장분지형(絞首剔臟分肢刑)을 실행하는 집행관이 된 기분이었다. 나사못에게도 구두에게도 자꾸 미안해서 이제는 운동화를 신는다. 새 구두는 어디서 발이 묶였는지 당도하지 않는다. 그래도 안달하지 않는다. 기다리던 그것들이 동구를 빙 돌아갈 때마다 속을 태웠다면 나는 진작 재다.

뇌가 끈적끈적

단골 미용실에 지나 디자이너 선생님이 돌아왔대서 두 주나 일찍 머리카락을 잘랐다. 고개를 숙이면 왼팔이 저리다. 친구들이 주니어 사진을 보내곤 하는데, 서 씨의 아들은 어제 ‘××시 줄넘기 왕중왕전’ 3등 트로피를 제 것으로 만들었다. 바지 기장의 왕도는 여전히 모르겠다. 피 섞인 객담을 뱉곤 해서 조금 걱정이다. 학교 자판기의 맥스웰하우스 캔커피가 백 원이나 올라서 레쓰비를 마신다. 어지럽다. 잠들기 직전에는 내 오른쪽 손목이 작두에 잘리는 광경을 본다. 욕실 등을 LED 20W 주광색으로 교체했는데 너무 적나라해서 자존감에 악영향을 끼치고 있다. 열여섯 시간을 잤지만 시럽 위에 누워 있는 것 같다. 병원에 가야 할 것 같은데 진료과를 모르겠다. 엄마가 전화를 받지 않는다.

파편, 2019년 11월.

20191101(금)
지난주부터 욕실 등이 켜지지 않는다. 전구를 갈아보려고 힘을 쓰다가 등이 천장에서 뜯어져버렸다. 아무리 씻어도 몸이 검다. 거울 저편에서 수염을 깎는 나는 이불 속으로 당장 돌아가야 할 것처럼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