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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편, 2018년 07월.

20180714 (토) 편의점에 가서 떡볶이를 사 왔다. 인사는 나 혼자 했다.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3일 만에 백 미터 걷고 두 마디 말했다.
20180716 (월) 폴 모랑(Paul Morand, 1888~1976)의 글을 읽고 싶다. (번역본이 없어서) 어떤 글인지도 모르지만… 코스머폴리턴 문학의 창조자, 신감각파, 혼란과 퇴폐, 서정적 필치, 『밤이 열리다』와 『밤이 닫히다』 등 소개 몇 줄만으로도 지극해진다. 하지만 나는 끝내 읽지 못하겠지.
20180717 (화) 회의가 오늘이 아니네? 원래 제헌절에 만나기로 했는데, 며칠 후 상대편으로부터 “어쩌고저쩌고 수요일에 봬요”라는 메시지를 받았지. 나는 제헌절이 수요일인가보다 생각하며 “알겠습니다”라고 답했고. 약속장소에 서서 “어디세요”라고 물은 뒤에야 오늘이 제헌절이지만 수요일은 아니라는 걸 배웠지.
20180722 (일) 새벽에 고기를 구우면서 내가 바란 것……



파편, 2018년 06월.

20180604 (월) 우리는 정기적으로 다른 사람이 될 필요가 있어.
20180606 (수) 그야말로 옛날식 커피숍에 앉아.

20180606 (수) 반년을 끌던 일이 끝났고 귀농을 고려케 했던 회의도 마쳤고 현충일과 지방선거 덕에 수요일 수업 일정도 비었다. 영화를 네 편 봤고 웹소설을 일곱 권 읽었고 새 게임 여섯 개를 각각 서너 시간쯤 플레이하다 지웠다. 지인의 글도 슬쩍 찾아 읽었다. 그냥 집을 나섰다가 새벽까지 25㎞를 걷기도 했다.
20180606 (수) 재미없다. 몽땅 재미없다. 소설이라도 다시 쓰면 좀 나을까.
20180607 (목) 눈만 뜨면 두통이 온다. 그때 그 각막 손상이 또?
20180608 (금) 3년 만에 안과 진료. 역시나 각막에 상처가 났다. 인공눈물과 각막 보호 및 치료제용 점안겔을 처방받았다. 여유 좀 생겼다고 많이 보고 많이 읽은 탓이겠지.
20180618 (월) 어제는 종즈(粽子)를 얻어먹었다. 어느 중국 유학생이 단오절에 먹는 전통 음식이라며 가져온 게 나한테까지 돌아왔다. 대나무 잎을 풀었더니 찹쌀밥과 대추가 깜찍하게 뭉쳐있었다. 맛은 약밥과 비슷했지만 많이 달았다.
20180620 (수) 고교 시절 은사님을 뵈러 영등포에 간다.
20180621 (목) 나의 선생님. 어제도 내 손을 한참 잡아주셨지.

20180622 (금) 방학이 시작됐다. 어제까지 많은 사람과 이별을 했다. 나는 최선을 다해 아쉬워했다. 다시 못 볼지 모른다 생각하는 건 나 혼자 같았다.
20180623 (토) 집을 나서다 대문 옆에서 택배봉투를 발견했다. 기왕 오셨으면 헛기침이라도 하시지. 오만 원어치 책을 사야 주는 부채가 갖고 싶었는데 책을 받아쥐고서 떠올랐다. 아무려면 어때. 책표지를 보듬다가 살짝 엿본다는 게 어느새 반절이나 읽어버렸다. 약속이고 뭐고 마저 읽어야 할지 지금 큰 고민이다.
20180623 (토) 영화관에서 배우 황정민을 봤다. 당장 누군가의 살을 썰러 갈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처럼 잘 벼린 인상이었다. 드라마 《그저 바라보다가》의 구동백이나 영화 《여자, 정혜》의 작가 지망생 같은 황정민은 평소 어디에 보관해두는 걸까.
20180624 (일) 이 책은 누워 읽게끔 만들어졌다. 등에 베개를 받치고 벽에 머리를 기댄 뒤 배꼽에 책을 세우면, 엄지손가락이 바깥 여백의 보라색 반원에 신기하리만치 딱 맞는다. 그리고 거북목이 될 거 같은 우려가 생길 때쯤 제주에서도 새 책이 쓰이고 있을 거라는 믿음이 확신으로 바뀐다. 나는 사인이 두 개다.


20180628 (목) 마침내 성적 입력을 끝냈습니다. 저도 방학에 돌입합니다.

파편, 2018년 05월

20180509 (수) 새가 재잘댈 때까지 또 잠들지 못했다. 생각하고 싶지 않은 게 자꾸 시간을 거슬러 넘어왔다. 대체로 무례함과 관련된 것이었다.
20180514 (월) 서울독서교육지원본부… 저는 어쩌다 여기 있는 거죠?

20180515 (화) 어제 현기영 소설가를 만났다. 작가는 자신을 제주 4.3 항쟁 희생자의 한을 씻김 하는 매개자로 여겼다. 그 소명은 여전히 무거워 보였다. 이따금씩 참사에 물든 말을 떠듬떠듬 소리 내다가 그 광경이 잡힐 듯한 지 두 손을 허공으로 뻗어 움켜쥐곤 했다.

20180516 (수) “제가 쉽게 잊히는 편이에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해놓고 가만히 생각해보니 참인 것 같네. 나중에 백문백답 장점란에 써야지.
20180517 (목) “사랑에 관한 소설이 있을까요? 기억에 남는.” 자정이 얼마 남지 않은 때에 받을 질문은 아닌 거 같았다. 그런데도 자정 가까이에 하기 좋은 질문처럼 보였다.
20180517 (목) 다른 사람이라면 더 잘할 일을 내가 하고 있다. 여러모로 폐를 끼쳐 죄송합니다. 다음부터는 안 하겠습니다.
20180518 (금) 기억은 마지막에 기억하는 쪽이 주인이지. 오늘의 부끄러움은 내가 반드시 각색하겠다.
20180518 (금) 가수가 떠나자 축제도 끝났다.
20180518 (금) 축제가 끝나기 전, 그렇지만 진짜 축제는 아직이던 맑은 날 오후에 나는 잔디광장에서 무르게 웃고 있었다. 등받이 없는 의자를 싫어하는데 그 마음도 알아채지 못했다. 몇 분 뒤엔 그림 한 장을 건네받았다. 내가 오래전에 손을 놓친 소년이 웃고 있었다.

20180518 (금) 지난해 내가 제일 잘한 일은 단편영화 《나.아.당.궁》을 관람한 것이다. 그리고 올해 내가 제일 잘한 건, 몇 시간 전까지 《북바이북ToGo × 대중음악박물관》에 앉아있었던 일이다.



20180522 (화) 자꾸 부고가 온다. 느닷없이 상주가 된 이는 지금 없고 나중에도 없을 사람 얘기를 하며 웃고 울었다. 그리고 숨 내쉬듯 혼잣소리를 했다. 이제 보고 싶으면 어떡해. 나는 향내 같은 고요가 무서워서 아무 소리나 냈다. 생각해야지, 라고.
20180525 (금) 미안하지 않았던 행복이 없다.
20180527 (일) 나보다 더 나를 싫어하는 사람은 없어.